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요 며칠 사이에 뉴스를 탄 단골메뉴였거나 장안의 화젯거리가 된 게 여럿 있지만 그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관련 이야기들이 단연 돋보인다. 한중정상회담에 얽힌 앞뒤 이야기들이 사실은 사실대로 또 어떤 테마들은 약간의 재미를 덧칠해서 전해졌으니 그 내용도 각양각색이다. 뉴스를 보고 들어서 나름대로 알고 있는 것에 관해 지식인은 지식인대로 필부는 필부대로 전파하는데 그 이야기들은 화자(話者)의 취향과 호·불호에 따라 약간씩 달라지기도 했다.   

이번 문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가진 정상회담의 목적은 크게 보면 한중 간 우호친선 증진과 함께 한반도 평화 보장이라는 양대 축이라 하겠다. 외교 문제로 불거져 경제 보복으로 이어진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에 따른 양국 간 갈등 봉합이 우선적으로 정리돼야 했고, 북한의 끊임없는 핵미사일 도발에 따라 한반도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중국의 대북 압박 카드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같은 맥락에서 양국의 신뢰 회복과 관계 개선을 위한 한중정상회담 개최는 시의성이 있었다.

그렇지만 한국의 일부 언론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는 첫날부터 부정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중국이 우리 정부에 대해 주창해온 3불(三不), 즉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가입하지 않고,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한·미·일 3국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다’는 내용에 대한 비판이 따랐다. 또한 ‘한국 국빈을 초대해놓고 시진핑 국가주석은 난징으로 간 것은 중국의 무례(無禮)”라며 중국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모 방송에서는 중국 특파원을 연결해 보도하면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장쑤성 난징 기념식에 행차한 것은 사드 문제를 의식해 치밀한 계산에 의한 분석이라는 등 흥미 위주의 보도를 연발하기도 했다.  

국빈을 초대해 상대방 국가의 대통령이 자국을 방문하는 첫날에 초대 당사자는 현지에 머물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출타했다니.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예의에 충분히 어긋나는 일임은 틀림없다. 그 사정을 자세히 모르고 언론에 난 ‘중국의 무례’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는 국내 일부 화자들은 한국을 업신여기는 처사라며, 중국의 못된 짓거리를 성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방문 첫날인 12월 13일은 ‘난징대학살 80주년 추모일’이었고, 시진핑 중국주석은 그날 행사 참석차 정부지도자들과 함께 난징 현장으로 갔던 것이다.

난징대학살은 사건이 발생한 지 80년이 됐지만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라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으면서 전쟁의 공포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1937년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대는 그해 12월 13일부터 1938년 1월까지 6주간에 걸쳐 난징에 거주하는 30만명의 무고한 시민들에게 무차별 사격과 공습을 했다. 난징시 정부는 그 비극적인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해마다 추모해 왔는데, 중국 정부에서는 2014년에 매년 12월 13일을 난징대학살 희생자 국가추모일로 정해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는 것이다. 80년이란 세월은 흘렀어도 과거 침략국의 만행과 비인도적 처사를 역사의 교훈으로 새기는 날이니, 중국 정부가 대규모 추모식을 거행하는 것은 학살 희생자에 대한 사과를 포함해 올바른 역사 인식을 일본에 촉구하려는 뜻이 담긴 것이다.      

그런 사정이라면 회담 기간을 하루 연기해 정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방중이 시급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나라 제삿날에, 중국인들이 애도하는 날에 방문하는 자체도 썩 잘된 날짜 선택은 아닌 것이다. 이번 문 대통령의 방중 기간 중 양국관계 입장에서 좋지 않은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방문 첫날 마중 나온 중국 정부 인사의 격도 그렇고, 문 대통령의 방중 일정을 취재하던 한국 사진기자들이 중국 측 경호원들에게 폭행당한 사건도 그렇다. 이 같은 일들은 엄연한 외교적 결례로 성공적인 국빈 방문에 흠이 가는 일들이 아닌가. 

현대에 들어서서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 외교는 비일비재하다. 세계 정상과 경제 총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행사나 정치-경제 포럼들이 정기적으로 열리는 가운데 특정국가 간 정상회담과 국제기구 조직원들의 교류행사가 다반사로 열린다. 민간외교라는 말이 있는 만큼 외교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바 국제사회에서 외교의 주요 목적은 세계평화와 국익실현인 것이다. 자국의 국가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적 이익을 위하는 등 실리외교가 더욱 활발해지는 추세에 있다.  

이번 한중정상회담은 한반도 정세가 위태롭고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둔 시기에 양국 정상이 만나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안된다’는 핵심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무게감이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성과 없는 굴욕외교니 홀대받았다느니 말들이 많다. 하지만 외교적 성과는 개개의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듯 큰 덩어리를 봐야 한다. 현실적으로 한중 양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지키는 동반자적 입장이고, 또 관계 회복이 재확인된 만큼 사소한 문제의 침소봉대보다는 윈윈(Win-Win)하는 새로운 차원의 동행에 나서야 한다. 큰 틀의 국익을 실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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