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구가 남부민동에 영국공사관 옛터가 있었던 것으로 최종 확인하고 16일 오후 주한영국대사와 기념석 제막식’을 연 가운데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 부산 서구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16
부산 서구가 남부민동에 영국공사관 옛터가 있었던 것으로 최종 확인하고 16일 오후 주한영국대사와 기념석 제막식’을 연 가운데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 부산 서구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16

서구·주한영국대사, 16일 기념물 제막식

“두 나라 지속적인 우정을 기억하는 장소 되길”

[천지일보 부산=김태현 기자] 부산 서구(구청장 박극제)가 남부민동에 영국공사관 옛터가 있었던 것으로 최종 확인하고 기념석을 세웠다.

16일 오후 주한영국대사와 부산 서구는 부산 서구 남부민동 제일아파트에서 ‘옛 영국 공사관 터 기념석 제막식’을 열었다.

한국전쟁 당시 UN군으로 참전한 영국군을 지원하고 전란의 참상 속에서 고통받던 우리 국민을 위로하며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영국공사관 옛터 찾기는 찰스 헤이 대사의 제안과 명예영사관의 끈질긴 노력으로 결실을 맺었다.

명예영사관은 공사관 옛터가 당시 임시수도 정부청사가 위치했던 서구 일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지난 2월부터 서울과 부산을 오르내리며 관련 자료를 찾았다.

그러다가 국가기록원에서 1952년 영국공사관저 대상 건물 지정과 명도를 지시하는 국무총리실 내부문서를 통해 공사관의 위치를 알아냈고 서구와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 등의 도움으로 현 제일아파트 자리임을 확인했다.

당시 영국은 우리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은 지 1년 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으로 이전했는데 국무총리실이 제일아파트 자리의 2층 목조건물을 공사관저로 제공하면서 전란에 휩싸인 우리나라와 국민을 지속적으로 도울 수 있었다.

당시 영국은 무려 8만 1084명에 이르는 젊은이와 막대한 물자를 우리나라에 보냈으며 이 가운데 1106명이 고귀한 목숨을 잃었다.

공사관이 서울로 되돌아간 뒤 이 자리에는 1996년 제일아파트가 건립됐는데 명예영사관은 이번에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담장을 허물고 기념석과 새 울타리를 세운 것이다.

찰스 헤이 대사는 “기념석이 설치된 이곳이 한때 한국 역사에서 행한 위대한 역할과 영국과 부산시민 간의 지속적인 우정을 기억하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극제 서구청장은 “공사관은 두 나라 외교의 영속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그 상징을 되찾아 기념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라고 말하면서 “기념석 건립은 한국전쟁 당시 힘과 지혜를 모아 국난 극복에 앞장섰던 임시수도 부산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