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구절초 엽서 - 이정자
[마음이 머무는 시] 구절초 엽서 - 이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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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 엽서

 

이정자

 

 

먼 산 가까워지고 산구절초 피었습니다.
지상의 꽃 피우던 나무는 제 열매를 맺는데
맺을 것 없는 사랑은 속절없습니다.
가을 햇살은 단풍을 물들이고 단풍은
사람을 물들이는데
무엇 하나 붉게 물들여보지도 못한 생이
저물어 갑니다.
쓸쓸하고 또 쓸쓸하여
찻물을 올려놓고 먼 산 바라기를 합니다.
그대로 잘 있느냐고,

 

[시평] 

구절초는 들국화의 한 종류이다. 이름의 유래는 몇 가지가 있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에 채취한 것이 가장 약효가 좋다 하여 구절초라 한다. 즉 아홉이 겹치는 날에 꺾는다는 의미의 이름이다. 다른 하나는 줄기의 마디가 단오(端午)에는 다섯 마디였다가, 중양절에는 아홉 마디가 된다는 뜻의 구(九)와 중양절의 ‘절(節)’의 의미를 써서 구절초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 가을이 시작되는 때에 피기 시작해 가을이 다 갈 때까지 피는 꽃 구절초. 비록 꽃은 작지만 가을의 한 상징이기도 하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구절초는 온 산에 피고, 여름 내내 지상에서 꽃 피우던 식물들은 이제 이울어 열매를 맺고, 가을 햇살은 단풍을 물들이고, 단풍은 사람의 마음을 붉게 물들이는데, 돌아보면 이 가을의 단풍 마냥 무엇 하나 진하게 물들여보지 못한 생(生), 때로는 후회스럽기도 하다. 가을을 맞아 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데,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삶을 산 듯하여, 그 쓸쓸한 마음 가을의 그 깊이만큼이나 깊어만 가는구나. 

그러나 어디 세상의 모든 것 이루고, 붉게 물들일 것 물들이며 살아가는 사람, 그렇게 살아왔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지나고 나면, 모두가 부족한 듯하고, 모두가 후회스럽기도 한 것이 우리들 한 생애가 아니던가. 차물 올려놓고 먼 산 바라기를 하며, 문득 떠오르는 지난날의 그 사람. 한 생애, 문득 떠오르는 그런 그리운 사람만 있어도 그 삶, 나름대로 족한 것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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