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을지대 겸임교수 

 

북한 사회과학원 인권문제연구소라는 곳에서 세계인권의 날인 12월 10일을 맞아 소위 인권백서라는 것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보면 “이 지구상에서 누가 진정으로 인권을 옹호·실현하고 누가 인권을 유린·말살하여 왔는가를 밝히고자 한다”면서 “우리 공화국은 인민대중의 민주주의적 자유와 권리를 가장 철저히 옹호하고 가장 훌륭하게 실현해주고 있는 참다운 인권옹호, 인권실현의 나라”라고 강변했다. 

야바위 놀음도 유분수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저급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참다운 인권은 바란다고 하여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총대를 강화하여 국권을 수호해야만 실현될 수 있다”며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나라들이 던져주는 몇 푼의 돈과 회유·기만에 넘어가 주권국가들의 자주권 침해와 인민들의 인권유린에 동조하고 그에 가담하는 나라는 앞으로 자기 나라도 반드시 인권 공격대상으로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다시 말해 북한식 표현으로 조국을 배신한 탈북자들이 외세의 모략에 빠져 공화국을 거짓으로 공격하고 국제사회 또한 이에 동조하고 있으므로, 모든 책임은 외세에 있고 이 외세가 호시탐탐 자신들의 공화국을 겨냥하고 있기에, 국권수호가 가장 우선이라는 기존의 해괴한 논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보는 것은 다름 아닌 ‘참다운 인권’이라는 단어의 선택이다. 필자와 오랫동안 교분을 나누었던 북한내부의 저항조직은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국제사회에 보내는 호소문을 공개하면서 공식 명칭을 ‘참다운 인권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었다. 

이처럼 참다운 인권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인권에 대한 세간의 주장들이 거짓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바, 김정은 세습독재세력의 입장에서는 외세의 인권운운 자체가 거짓이라는 것이고, 북한내부의 저항조직에 있어서는 북한당국의 인권백서 등이 가소롭기 짝이 없는 거짓 선전선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대칭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양쪽 모두가 참다운 인권이라는 표현을 통해 함축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당시 북한내부의 저항조직은 “우리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공민들이고 참다운 인권을 원하는 사람들입니다”라고 운을 뗀 뒤, “우리나라 속담에 (법은 멀리에 있고 주먹은 가까이에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다운 인권을 주장하는 우리의 솔직한 목소리를 지켜줄 국제사회의 법은 멀리에 있고, 무자비한 탄압이 가까이에 있어 무기명으로 편지를 보냅니다만, 국제사회 앞으로 보내는 김정은 정권의 반인권범죄 증언 자료는, 무기명으로 된 목소리가 아니라 인권유린 속에서 신음하는 우리나라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아 보낼 것입니다”로 호소문을 마무리하면서, 노예로 연명하는 북한주민들이 세상의 소식을 조금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라디오 보급에도 힘써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정점을 향해 내달리고 있고, 미국의 대북군사옵션이 심상치 않게 회자되는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의 상황에서, 북한당국이 인권에 대해 물 타기를 하려는 차원의 백서가 발표된 이후, 곧이어 북한주민들이 겪었던 강제북송 등에 대한 인권유린의 증언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것은 결코 예사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김정은의 집권이 시작되자마자 총성을 울려서라도 탈북자의 ‘탈’자라는 단어도 내 귀에 들리지 않도록 하라는 특별지시 이후, 북중 국경지역을 통한 탈북자들의 숫자는 급감했고, 북한내부에서는 도망칠 엄두도 못내는 노예주민들의 비명소리가 하늘에 닿고 있음은, 곧 새벽을 목전에 둔 칠흑의 어둠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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