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러슨 “조건없이 대화 가능”
백악관 “北 태도 개선 있어야”
“트럼프-틸러슨, 또 불화 노출”
[천지일보=이솜 기자]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미 정부 내에서 북핵 문제 해법을 놓고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미 수차례 경질설이 불거진 틸러슨 장관의 발언에 대해 재빠르게 거리를 두면서 실제 불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틸러슨 장관은 12일(현지시간)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북한과 전제조건없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북한의 도발 중단과 비핵화 의지 확인 등 기존 조건을 일단 접어두고 일단 대화의 문을 열어보겠다는 파격 제안을 내놨다.
심지어 틸러슨 장관은 “(핵·미사일) 프로그램들을 포기해야만 대화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북한이 원한다면 만나서 날씨 얘기만 할 수 있다고도 했다.
틸러슨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그동안 비핵화 약속 없이는 대화도 없다던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기조에서 한발 물러선 의미로 받아들여져 ‘북한에 보낸 공개 초대장’이 아니냐는 큰 파장을 낳았다.
당시 틸러슨 장관은 이 부분에 있어서는 트럼프 대통령도 비슷한 생각이라고 강조했으나 트럼프 대통령과의 충분한 교감 아래 나온 제안인지는 확실치 않아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앞서 경질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틸러슨 장관은 지난 9월 말 중국 방문 중 북한과 대화 채널을 열어두고 있다고 공개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트위터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며 대화론을 일축한 바 있기 때문이다.
틸러슨 장관의 발언이 주목을 받자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바로 “북한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는 변하지 않았다”며 “북한은 일본, 중국,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가 안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틸러슨 장관의 발언과 다소 온도차가 있는 성명을 내놓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마이클 앤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도 “북한의 근본적 행동 개선이 없이는 북한과 어떤 대화도 할 수 없다”며 “북한이 최근 미사일 시험 발사한 점을 고려하면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시점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후 국무부에서도 일종의 해명을 냈다.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은 “틸러슨 장관은 새 대북 정책 기조를 만들지 않았다”라며 “국무부 자체 대북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북한이 한반도의 평화적 비핵화와 관련해 신뢰할 수 있는 대화를 할 용의가 있을 때 대화를 계속할 여지가 있지만, 지금 그 때가 아니다”며 “현재 양국 대표들이 앉아서 그러한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됐다는 어떠한 징조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전날 틸러슨 장관의 “대화하려면 일정 기간 휴지기가 있어야 한다”는 발언과 맥락을 같이 한다. 틸러슨 장관의 발언을 완전히 뒤집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다소 부정하는 뉘앙스가 있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백악관 관료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을 독려한 상황에서 나온 틸러슨 장관의 발언이 동맹국들 사이에서 혼란을 싹트게 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틸러슨 장관의 발언 직후 백악관이 성명을 낸 것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NYT는 평가했다. 신문은 이 성명을 “말하자면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이 계속 이웃 나라들을 협박한다면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하면서 “백악관이 틸러슨 장관의 발언으로부터 거리를 두기까지는 불과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틸러슨 장관은 오는 15일 뉴욕에서 열리는 북한 핵확산방지와 관련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장관 회의에 참석한다.
노어트 대변인은 성명에서 “틸러슨 장관은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 할 것”이라며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안보리 모든 회원국들에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을 유지할 것을 계속해서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