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제가 맡은 역할을 제가 미워할 줄 몰랐습니다. 미운 모습이 떠오르고 그러네요.”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개최된 영화 ‘1987(감독 장준환)’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김윤석이 이같이 말했다. 영화 ‘1987’은 한 젊은이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골리앗같이 강고한 공권력과 부딪히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이었던 격동의 1987년 6월의 이야기를 다룬다.
‘타짜’ ‘추격자’ ‘황해’ ‘해무’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검은 사제들’ ‘남한산성’ 등에서 오직 자신만의 캐릭터를 완성해내는 명품배우 김윤석은 이번 영화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은폐를 지시하는 대공수사처 ‘박처장’ 역을 맡았다.
배우 김윤석은 “장준환 감독님하고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도 그렇지만 좋은 역할을 안 준다. 좋은 역할을 떠나서 어려운 역할을 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문을 뗐다.
그는 “가장 맡으려고 안 하려고 하고 어려운 역을 저한테 제일 먼저 내밀었다. 매우 많은 갈등이 생겼다.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습니다’라는 대사를 내가 하게 될 줄이야”라며 “저는 저 대사가 일간지에 도배된 기사를 본 세대다. 나이로 볼 때 제가 최검사나 윤기자를 못할 것 같았다. 장 감독님이 ‘김정남을 하실래요, 박차장을 하실래요’라고 말했다. 이후 박차장을 하시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종철 열사가 제 고등학교 2회 선배님이시다. 이 배역을 해야 영화가 만들어지고 이왕 하는 거 최선을 다해보자고 해서 맡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윤석은 “시나리오 초고부터 받아서 봤다. 장준환 감독님과 과연 영화보다 현실이 더 영화 같은 이야기, 다큐멘터리보다 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자신이 있느냐. 희극의 재미가 아니라 영화적인 재미, 가치가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느냐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며 “시나리오가 수정되면서 마지막 촬영본의 시나리오가 나왔을 때 굉장히 만족스러웠고, 당시 대학생이었던 저도 공감했다”고 회상했다.
박처장은 평안남도 지주 집안 출신으로 6.25가 나던 1950년에 월남해 그 시절 겪은 고초로 빨갱이라면 치를 떤다. 수사에 있어서 고문 등 수단을 가리지 않는 집요한 수사력과 카리스마로 간첩 및 용공 사건을 전담하는 대공수사의 대부가 됐다.
김윤석은 “박처장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다. 가족의 비극사가 있지만 신념과 애국심이라고 하는 권력의 도구이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합리화하려고 한다”며 “그렇게 권력을 지향하려다 보니 무리수가 따를 수밖에 없다. 잘못된 노선의 버스를 탔으니까 결국 그 버스가 퍼질 때까지 가다가 제일 먼저 주저앉는 이중성을 많이 생각했다. 그런 모습이 어쩌면 제가 어른이지만 앞으로 더 지혜로운 어른이 되기 위해 정신이 깨어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배우 김윤석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 ‘1987’은 오는 27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