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축구만큼 단순한 스포츠도 드물다. 꼭 축구공이 아니어도 찰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차고 놀면 그것이 곧 축구다. 깡통, 돼지 오줌통, 우유팩 등 축구를 할 수 있는 물건은 세상 도처에 널렸다.

근사한 골대가 아니어도 얼기설기 나무를 엮거나 골목의 작은 돌이나 전봇대도 골대 역할을 해낸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황무지나 발이 퍽퍽 빠지는 진흙 밭에서도 축구를 한다. 신기한 것은 그래도 즐겁다는 것. 

소재와 장소, 그리고 룰의 단순함. 그것이 축구의 매력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축구에 열광하는 것은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다.

<파운데이션> <강철도시> 등으로 유명한 미국의 SF 작가이자 과학 해설자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우리는 같은 값이면 우리와 성별이 같은 쪽을, 문화가 같은 쪽을, 그리고 고향팀을 응원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응원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그들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우리를 대신하는 사람이 누가 되었든지, 그들의 승리는 곧 우리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축구를 통해 사람들은 경쟁자보다 자신들이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것이다. 축구에서의 승리는 선수들만의 승리가 아니라 응원하는 사람 모두의 승리이기도 하다. 조그만 단체나 동네에서부터 국가나 대륙 간에서도 마찬가지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사상 최초로 4강에 들었을 때, 우리들이 그토록 온 몸으로 환호했던 것은 ‘대한민국도 굉장히 근사한 나라’라고 인식하게 된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대한민국이 변방의 별볼 일 없는 나라가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멋진 나라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그로 인해 그들의 자부심도 한껏 고양되었다.

축구는 그 나라의 민족성과 문화, 국력까지 고스란히 반영한다. 1986년 월드컵에서 우리가 아르헨티나와 맞붙었을 때, 우리 선수들은 뭔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당시 우리 사회는 혼란스러웠으며 그래서 우리의 축구도 어리둥절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보라. 우리 선수들은 세계 어느 나라 선수와 겨뤄도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경기력과 승패를 떠나 오히려 축구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여유도 있다. 그것은 곧 우리나라와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일전에선 ‘대~한민국’을 외치지만 월드컵 무대에선 일본을 응원해 주는 아량을 보이는 젊은이들이 많아진 것도 이번 월드컵에서 목격되는 새로운 현상이다.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긴 하지만, 그들의 패배가 곧 우리의 즐거움이라는 기존의 정서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그 역시 자신감과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다.  

월드컵은 경기 외적으로도 참 많은 화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골 넣는 골키퍼’ 김병지의 해설가 데뷔도 그 중 하나다. 2002년 월드컵부터 국가대표로서 그라운드를 밟아보지 못한 그였지만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해설가로 변신한 모습은 신선했다.

김병지는 초반 긴장감과 사투리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매 경기 3%씩 발전하겠노라 다짐하고 노력하는 그는 회를 거듭할수록 방송에 적응하며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축구 열기로 지구촌이 뜨겁다. 역대 최강의 실력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선전이 눈부시다. 우리들의 자부심과 열정도 활활 타오른다. 축복받은 시간이다. 우리는 축복의 시간을 즐길 권리와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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