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일부 경찰의 피의자에 대한 고문 의혹이 국가인권위원회의에 의해 불거져 엄청난 충격과 실망을 국민에게 안겨 주었다. 우리 경찰은 ‘민주경찰’과 ‘민중의 지팡이’를 자임하는 선진국 클럽 OECD 회원국가의 경찰이다.

나라의 국격(國格)에 걸맞지 않은 이런 야만성과 후진성이 국가 권력 기구 안에 남아 있었다면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다. 나라 망신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권위원회는 최근 서울 양천경찰서 강력팀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것으로 의심되는 고문 수사가 이루어진 혐의를 밝혀냈다. 피의자의 팔을 꺾고, 입에 재갈을 물리고, 발로 밟고, 얼굴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이고 때리는 것 등의 행위로 입에 담기조차 창피하다.

이에 따라 인권위원회는 피의자에 대한 가혹행위 의혹과 관련된 경찰관 5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고 경찰청에는 양천경찰서에 대한 직무 감찰을 권고했다. 검찰의 수사와 경찰청의 직무 감찰 결과를 지켜보아야겠지만 인권위원회의 발표로 보면 가혹행위의 혐의는 실망스럽지만 사실일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경찰 스스로도 느닷없이 터진 경찰의 고문 의혹에 적잖이 당황하고 놀란 모습을 보여주었다. 즉각 양천경찰서장을 비롯한 관련 경찰관 8명을 무더기로 대기발령 조치했다.

강희락 경찰청장은 이 같은 조치를 취하면서 ‘고문 의혹 제기만으로도 전국 경찰이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총수로서 전례 없이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가 느낀 충격을 가늠케 한다.

고문은 우리 경찰이 절대로 용납할 수도 없고 용납하지도 않는 ‘공공의 적’임을 천명했다. 이 같은 경찰 최고 수뇌(首腦)의 과단성 있는 조치로 우리 경찰 모두에게는 일벌백계(一罰百戒)의 교훈이 되고 세계 선진 여러 나라들에게는 우리 경찰의 참 모습에 대해 오해가 해소되는 계기가 됐기를 기대한다.

올해는 국격을 높이자는 것이 나라 전체의 큰 화두(話頭)이며 세계 주요 선진 20개국 정상회의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특별한 해이기도 하지 않은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지만 과거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 군에 대한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다.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였다. 경찰은 처음 박 군에 대한 고문치사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지만 사필귀정으로 고문기술자들에 의한 물고문 전기고문으로 박 군이 숨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고문 정권’ 규탄 시위가 벌어지고 온 나라는 민주화 투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었다. 고문에 가담한 사람들은 구속되고 내무부 장관, 경찰청장 등 책임 있는 사람들은 줄줄이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이 홍역을 치르고 나서 적어도 공권력에 의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공공연한 가혹행위와 인권에 반(反)하는 폭력은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양천경찰서의 경우가 보여주는 것처럼 음습한 어느 한 구석에서일망정 그 ‘독버섯’이 다시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됐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 방심하고 감시를 소홀히 했던 것인가.
양천경찰서 관계자들은 ‘피의자의 검거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은 있었지만 고문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야 놀라고 실망한 마음을 쓸어내려도 될 다행한 일이지만 사건의 자초지종과 진실은 검찰 수사와 경찰의 자체 감찰로써 엄정하고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한다.

피의자라 해서 기본적 인권이 무시돼서도 안 되지만 몸을 던져 범인 검거와 수사에 나서는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관들이 피의자들의 무고로 무력해지고 억울해 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관점을 갖고 있기에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와 경찰의 감찰 과정과 결과를 각별한 관심으로 예의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해두고 싶다.
경찰은 대민봉사와 강제력 행사의 두 얼굴을 가진다. 한 기관이 서로 상충되는 업무를 수행하는 셈인데 업무는 이렇게 상충되지만 어느 업무에서든 굳건히 발을 디디고 서야 하는 것은 강력한 인권보호자라는 민주 경찰의 보편적이며 공통적인 가치다.

이번 사건의 진상을 특단의 의지로 확실하게 가려야 하는 까닭도 바로 우리 경찰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민중의 지팡이, 민주경찰, 인권 수호의 경찰,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경찰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나라의 품격을 높여주는 경찰로 쇄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민주경찰은 민주국가의 얼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양천경찰서 고문 의혹과 같은 직무상의 가혹행위나 도덕적 해이와는 영원히 결별해야 한다. 강희락 청장의 말대로 고문 의혹이 제기됐다는 것만으로도 전국 경찰이 부끄러워하고 반성할 수만 있다면 우리 경찰은 면모가 일신(一新)되고도 남을 것이다. 또 마땅히 그래야 하며 그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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