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라는 시대적 아픔을 딛고 동양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등극하는 역사를 창조한 대한민국. 본지는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통한의 역사 속 전쟁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우리나라의 현재 위상과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짚어보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남북관계 긴장 속 통일은 ‘시대적 과업’
‘통일 한국’ 동북아 평화에 기여
전문가 “국민적 합의 도출이 먼저”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호르스트 쾰러 전 독일 대통령은 한반도 통일이 예상보다 빨리 다가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지난 2월 1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의 경험에 비춰볼 때 역사적 사건은 빨리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한반도의 분열과 분단을 뛰어넘어 ‘통일 한국’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는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제기됐다. 한반도 통일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은 물론 세계평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다.

◆ 민족의 비극 6.25전쟁
전 세계 가운데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에서 발생한 6.25전쟁.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벌어진 3년 1개월 동안의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6.25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만 520여만 명으로, 당시 남북한 인구의 약 1/6에 해당된다. 이 중 한국군이 무려 59만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UN 16개국 25만 5000여 명의 장병이 참전했고, 전쟁 비용과 관련해서는 세계 제1차 대전의 전비에 해당하는 150억 불이 지출됐다.

1950년 6월 당시 유엔군 즉각 참전 결의문은 ‘대한민국이 평화와 안전을 보장할 효과적인 조처를 즉각 취하여 줄 것을 유엔에 호소하였음을 감안하여 대한민국이 무력침략을 격퇴하고, 그 지역에서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하여 줄 것을 유엔회원국에게 권고한다’는 내용을 명시한 바 있다.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단순한 지역적 문제를 뛰어넘어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중대한 사안임을 입증한 것이다.

◆ 통일은 ‘시대적 과업’
천안함 사태로 긴장이 고조된 남북관계 속에서도 통일 한국이 주변국에게 위협이 되지 않고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는 확신을 심어준다면 주변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직접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란 주장이 있다. 이번 천안함 사태뿐만 아니라 반복을 거듭하고 있는 남북관계 긴장 속에서도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목소리는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하정열 (사)한반도 이야기 대표는 “평화구축과 평화통일만이 민족의 지속적인 번영을 보장하고 전쟁으로 인한 참화(慘禍)를 방지해 민족통일의 진정한 의미를 살릴 수 있다”고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또한 “21세기 국제경쟁시대에서 우리 민족의 균형적 경제발전과 번영을 위해서 평화통일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국민적 합의가 최우선”

통일 한국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대량난민사태나 경제재건 등과 같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 대표는 통일 기반을 확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는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통일은 우리 자신의 삶은 물론 민족의 장래와 직결되는 문제로 남북 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한반도 통일을 동북아의 평화와 협력의 특 속에서 추진한다는 한국의 통일정책 기본입장을 국제사회에 널리 홍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반도 통일의 비전을 공유하는 한편 신뢰를 심어주는 적극적인 통일외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일 한국을 향한 기대는 크다. 통일 한국의 인구는 세계 12위권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며 경제규모 면에서도 세계 10위권 내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골드먼삭스가 발표한 188번째 세계경제전망 보고서 ‘통일 한국, 대북 리스크에 대한 재평가(1장)’는 북한의 잠재력을 고려할 때 남북통일이 이뤄지면 달러 환산 GDP가 2050년 일본·독일 등을 제치고 중국 미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에 이어 8위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6.25전쟁 60주년을 맞은 현 시점에서 남북한의 긴장 상태는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때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끊어진 허리를 다시 잇고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통일 한국을 만들기 위한 정부와 국민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쉽진 않겠지만 평화통일이 되면 좋지”
6.25전쟁의 상처 간직한 우기매 할머니

▲ 우기매 할머니는 참혹했던 6.25전쟁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을 간직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김새롬 수습기자]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회원 중 역경을 딛고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에게 주는 ‘장한 어머니상’.

최근에 이 상을 받은 우기매(82, 서울시 강북구) 할머니를 만나 참혹했던 6.25전쟁과 굴곡진 인생역정을 들어봤다.

지난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자 우 할머니는 잠시 회상에 잠긴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할머니의 이마에 움푹 패인 주름살이 오랜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했다.

우 할머니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20대에 겪은 6.25전쟁에 대해 “폭격 때문에 돈이고 뭐고 다 버리고 애기만 안고 뛰어나왔었지. 집이 불에 타 모든 것을 잃었다”고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서 숨는 사람도 있었어. 서울 시내에 있는 집들은 다 타고 길거리엔 피난민과 구걸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때는 정말 먹을 게 아무것도 없었어.”

중공군이 땅에 묻어둔 양식까지 모두 가져가 여러 날 동안 배를 곯기도 했다고 우 할머니는 증언했다. 혹독한 추위 때문에 애를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밤이나 낮이나 폭격은 멈추지 않았고 길거리엔 꽁꽁 언 시체들로 가득했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친정 동네에 들어가 얻어먹고 다녔는데 갓난쟁이는 차마 못 버리겠더라고. 잘 곳이 없어 남의 집에서 눈치 보며 하룻밤을 자고….”

더욱 안타까운 일은 전쟁터에 나간 남편의 생사조차 알 길이 없었다는 것이다.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며 무사귀환을 바랐건만 우 할머니는 전사통지서 한 장 받아보지 못했다.

여자의 몸으로 살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면서 아들은 홀로 어떻게 키웠냐고 묻자 “동네 사랑방 하나 얻고 삯바느질해서 아들을 초등학교에 보냈는데 전쟁을 겪은 후라 고생을 참 많이 했지. 차비도 못주고 도시락도 못 싸줬는데…. 그래도 아들이 열심히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6.25전쟁 60주년을 맞았지만 우 할머니에게 전쟁의 상흔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듯했다.그럼에도 우 할머니는 “전쟁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에 무력통일은 원하지 않아. 쉽진 않겠지만 평화통일이 되면 좋지”라며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직접 전쟁을 겪으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말하는 우 할머니. 이러한 전쟁 세대의 굴곡진 삶은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투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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