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부터 서울지역의 모든 일반고에 개방-연합형 종합캠퍼스 교육과정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교육부에서 추진 중인 ‘고교학점제’와 유사한 제도로 고등학생도 대학에서처럼 원하는 수업을 선택해 수강할 수 있는 수업모델이다. 지난해부터 일부 학교에 적용한 ‘문·이과 통합’을 목표로 문과생도 이과 심화과목을, 이과생도 문과 심화과목을 수강 신청할 수 ‘종합캠퍼스’ 제도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교육부도 전면 도입 시기를 2022학년도로 공표한 상태에서 서울시교육청은 이보다 3년 앞당겨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 희망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보다 분명한 학업동기와 의욕을 가지고 수업에 참여하고 교사들은 교육과정 운영의 재량권을 발휘하고 수업에서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도 신중하게 전면 도입 시기를 늦추고 아직도 학부모, 학생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은 제도를 일개 교육청 차원에서 “2년 후에 전면 실시하겠다”고 발표하며 자화자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군다나 내년에 교육감 선거가 예정돼 있다. 내년에 이 정책을 이어갈 교육감이 선출되지 않을 경우 고스란히 폐지 수순을 밟을 게 뻔하다. 결국 그 피해는 교사와 학생들이 떠안게 되고 국민들이 낸 세금만 낭비하게 된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학생이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미국과 영국의 고등학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학입시 제도나 교사의 수, 교실 여건 등을 갖추고 있는 선진국에서 가능한 제도를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무리하게 강행하는 이유를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다. 아이들 학업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건 맞지만 단지 학업부담만 줄이려고 시행해서는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고교학점제는 내신 절대평가제 시행, 외고, 자사고, 특목고 폐지가 동반돼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이 고교학점제를 왜 밀어붙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대학입시에서 학종과 수시를 줄이고 정시를 늘려야 한다. 그나마 가장 공정한 제도가 정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효과가 채 검증되지 않아 논란이 많은 ‘고교학점제’는 공청회 한번 제대로 안 거치고 정부보다 3년이나 앞서 전격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진보성향 교육부 장관, 교육감들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 몽둥이만 안 들었지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과거 군사정권하에서도 교육정책만큼은 밀어붙이기 식으로 시행한 기억이 별로 없다. 어린학생들이 그 대상이기 때문이다.

일반고 수준부터 정상화시킨 다음에 고교학점제, 종합캠퍼스, 절대평가를 시행해도 늦지 않다. 고교학점제와 유사한 과목 선택제를 시행하는 학교의 현실을 보면 쉬는 시간 10분 동안 교실 옮겨 다니느라 난장판이다. 교사가 수업을 끝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수업 끝나는 종만 ‘땡’ 치면 교실 옮겨가기 위해 아이들이 일어나 움직인다. 교사도 통제를 포기한다.

학생에게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듣게 하면 비인기 과목은 거부하고 인기 과목, 인기 교사에게 학생들이 몰린다. 선택을 못 받은 과목이나 교사는 학생들을 억지로 배정하니 교사나 학생 모두 불만이 쌓인다. 제대로 된 수업이 진행될 리 없고 고교수업의 파행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고교학점제 하에서 평가는 대학처럼 ABC로 할 것이다. 상위 30% 정도는 A학점을 받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내신은 절대평가가 된다. 내신의 변별력이 사라지니 대학에서는 자소서나 학종의 비중을 높이고 일반고 출신보다는 자사고, 특목고 출신들을 선호할 것이다. 학부모들은 불공정한 학종과 수시를 없애고 정시를 확대해 공정한 수능 점수로 대학을 가게 해달라고 원하고 있는데 정반대의 정책을 ‘종합캠퍼스’니 ‘고교학점제’니 하며 꼼수로 밀어붙이고 있다. 학생들은 현재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모한 교육실험의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이 명문대에 입학하길 원한다. 정시로만 신입생을 뽑던 시절엔 수능 점수만 높으면 명문대를 갔다. 막노동을 하며 공부해 서울대 법대도 갔다. 하지만 수시, 학종이 생긴 후부터는 점수 이외의 기준으로 명문대에 갈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생겼다. 학종을 그럴듯하게 포장할 능력이 되는 금수저 자식들이 명문대에 쉽게 들어가게 된 이유다.

군대에서 가장 최악의 지휘관으로 ‘머리는 나쁜데 부지런한 지휘관’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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