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김정은이 또 다시 육중한 몸을 이끌고 백두산에 올라 뭇사람들의 의구심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 2013년 12월 장성택 종파사건을 일으키기 직전 바로 저 모습으로 백두산에 올랐던 기억이 있어 우리 모두를 긴장시키고 있다. 중대한 고비마다 백두산을 찾았던 김정은이 이번엔 과연 무슨 의도로 갔을까. 몇 가지로 나누어 분석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내부결속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이 백두산에 갈 때마다 “엄동설한” “모진 바람” “온갖 역풍과 역경” 이런 배경을 선전한 뒤 “백전백승” “뜨거운 기상” “천출위인” 이런 표현으로 김정은을 띄우는 개인숭배의 절정을 장식하곤 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른바 “11월 대사변”, 화성-15형 발사를 이뤘다고 선전을 하면서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실현해온 격동의 나날들을 감회 깊이 회억(회고)했다”고 1면 기사에 대서특필했다. 백두산은 이른바 김일성이 항일투쟁을 했다는 혁명전통의 상징이며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 고향으로 선전하는 북한 말로 ‘혁명의 성지’이다. 지난달 화성-15형 발사로 한반도 정세가 크게 불안해진 만큼 세습 혈통의 정통성을 강조해 내부결속을 유도하는 게 이번 백두산 일정의 표면적인 이유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북한의 대내외 정책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위해 최측근들을 이끌고 백두산으로 갔을 수도 있다. 엊그제는 유엔 사무차장이 닷새 동안 방북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는데, 북한매체는 “유엔과 의사소통 정례화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또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IOC 위원장이 방북을 할 거란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 반면 미국 조야에선 석 달 안에 북핵을 손 봐야 한다든가 전쟁 가능성이 커진다는 주장이 핵심인사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평창올림픽 참가 여부가 이미 도마 위에 오른 만큼 북한도 이를 두고 외교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핵무력 완성을 기정사실화한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완전한 핵 보유국 선언을 할 확률이 높은데, 내부결속을 다진 뒤 대외 협상력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현재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이며 북한군 총정치국장으로 군 서열 1위인 황병서와 제1부국장 김원홍 대장이 처벌 중에 있는데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결심을 내리기 위해 백두산을 찾았을 수도 있다. 이는 지난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직전에 김정은이 한 행태로부터 반추되는 것으로 당시 ‘삼지연 8인방’이라고 해서 황병서, 김원홍, 김양건, 한광상, 박태성 등 8명이 김정은과 백두산에서 장성택 숙청을 모의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오늘 보다시피 그 8인방 중에 다시 백두산에 따라간 인물은 현재로선 마원춘 1명밖에 안 보인다. 

물론 수시로 공포통치를 하는 김정은이 곧바로 누군가를 숙청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이번에는 최룡해 당 부위원장과 당 김용수 부장, 조용원 조직지도부 부부장 등만이 공개되고 있어 수행 인사의 규모가 작아 혹시 김정은이 B1B와 F-22랩터 등을 피해 잠깐 도피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는 12월 17일이 김정일 사망 6주기인데 김정은이 이를 앞두고 백두산에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발사, 또는 7차 핵실험을 결심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김정은은 2014년과 작년에도 11월에 백두산을 방문한 만큼, 연례적인 행사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그때와 다른 중대한 시점이 오늘이란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북한은 오늘처럼 운명이 경각에 달하진 않았다.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은 중간 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국제사회의 제재도 ‘시늉’에 그치고 있었다.

오늘은 다르다. 이제 김정은 정권은 자기 운명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려야 할 긴박한 상황의 도마 위에 올라있다. 미국과 UN의 전방위적 제재로 약 2~3개월 뒤에는 북한 체제가 지도상에서 사라진다는 긴박감이 김정은을 백두산의 엄동설한으로 내몰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현재 미국은 3개월을 시한부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이 3개월은 미국의 군사옵션이 행동으로 옮겨진다는 의미와 함께 북한의 모든 것이 고갈돼 ‘파탄’으로 드러난다는 시한부도 포함돼 있다. 현재까지 북한이 잘 버티어 오는 것은 60여년 다져온 사회주의 관성의 결과일 수 있다. 허나 이 그 관성은 거의 끝나가고 있다. 오죽하면 중국의 창바이현에 북한 인사들과 탈북민들을 수용할 수용소가 건설될까. 수용소의 건설은 곧 북한 정권 해체의 수순이며 동시에 거기서 새로운 친중 정권의 조각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김정은에게는 기절초풍할 일인 것이다. 김정은이 머지않아 중국에서 푹 쉬며 굳이 엄동설한이 아닌 날에도 보통 사람이 되어 백두산에 자유롭게 오를 날이 눈앞에 닥쳐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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