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준 벤처기업협회 상근부회장/경영학 박사

 

대다수 중소기업이 수년에 걸쳐 기술을 개발하지만 창업 3~5년차 이른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건너지 못하고 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기술의 사업화에 실패하거나 어렵사리 개발한 기술이 유출 또는 탈취되기 때문이다. 이는 창업기업뿐만 아니라 성장한 기업도 마찬가지다. 최근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했다고 해서 시끄럽다. 서로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중소기업기술보호에 대한 관심과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거래나 납품과정에서 이른바 갑(甲)이 상세한 기술정보나 자료를 요구하면 을(乙)은 어쩔 수없이 응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기술을 빼앗기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특허권을 가지고 있어도 특허분쟁의 경우 시간과 비용 면에서 불리한 중소기업은 소송에 응해야 한다. 이긴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따라서 중소기업은 마땅한 기술보호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기술임치제도’를 언급했다. 중소기업이 관심을 가지고 활용할만한 제도다. 2008년 도입된 기술임치제도는 말 그대로 기술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금고의 역할을 한다. 중소기업의 기술정보나 자료를 제3의 기관인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의 ‘기술자료임치센터’에 보관하는 것이다. 나중에 기술유출이나 특허논란이 생기면 보관된 기술자료를 활용해 기술개발 및 보유사실을 입증해준다. 예컨대 거래관계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합의해 핵심기술자료를 보관(임치)하고, 나중에 중소기업의 개발사실의 입증, 폐업이나 파산, 기술 멸실(滅失) 등의 경우가 발생하면 임치된 내용을 확인·교부 받는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핵심기술을 보유하지 않아도 기술의 안전성을 확보하며 중소기업은 핵심기술의 외부유출방지와 신뢰성을 보장 받는다.  

기술임치대상이 되는 기술유형은 특허권, 실용신안권, 디자인권, 저작권 등의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정보와 제조·생산 방법, 판매방법 등 경영·기술상의 정보가 해당된다. 경영상 정보는 기업운영·관리에 관련된 기밀서류(재무, 회계, 인사, 마케팅, 노무, 생산), 기업매출과 관련된 기밀서류(원가, 거래처 정보, 각종 분석보고서 및 매뉴얼)를 포함한다. 기술상 정보는 생산·제조방법, 시설·제품설계도 및 매뉴얼, 물질배합비율 및 성분표, 연구개발보고서 및 관련 각종 데이터, SW소스코드 및 디지털 콘텐츠, IT/SW 핵심기술이 해당된다.  

기술임치건수는 매년 증가세를 보이는데 2015년 8560건, 2016년 9460건을 기록했고 금년 10월 현재 6800건에 이르렀으며 기술임치로 보호되는 기술은 총 4만여건이 넘는다. 정부는 기술임치를 통한 중소기업의 기술보호뿐만 아니라 임치기술의 사업화도 지원하고 있다. ‘임치기술사업화지원’은 임치기술의 가치를 고려한 사업화자금을 지원하는데 2015년 12.5억 원에서 2017년 현재 66개 업체 147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매년 증가하고 있다. 나아가 임치기술의 이전·활용을 지원해주고 있다.   

기술임치제도는 다양한 역할을 하는데 우선 기술탈취의 방지가 가능하다. 수·위탁거래 시 중소기업의 기술이 대기업으로 무단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므로 기술경쟁력을 유지하도록 한다. 또한 개발기업의 기술이 유출됐을 경우, 임치된 기술자료의 확인을 통해 개발사실을 입증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사내에서 누군가에 의해 악의적으로 기술정보나 자료가 삭제되거나 시스템 오류 등으로 인해 데이터가 손실됐을 경우, 임치된 것을 재활용할 수 있어 개발기술의 사장(死藏)도 막을 수 있다. 기술유출의 81%가 사내의 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들이 기술탈취나 유출, 오남용하는 경우 발각된다는 점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사용권 보장차원에서도 개발기업의 파산·폐업 등에도 추후 기술사용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R&D의 안정성을 확보하게 되는데, 정부 및 대기업 등이 투자한 기술개발의 신뢰성과 해당 기술의 보유·사용하는 기업의 신뢰성을 제공한다.  

앞서 나열한 기술임치제도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가 중소기업의 기술보호문제를 완벽히 해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적절하게 활용하는가는 일차적으로 중소기업 각자의 몫이다. 중소기업은 기술임치를 해도 기술이 유출될 것을 우려한다. 특히 대기업과 거래 시 대기업의 눈치를 보며 기술임치를 망설이기도 한다. 하지만 기술임치제도는 기술탈취나 유출의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는 좋은 제도다. 긍정적인 기능을 살려 적극 활용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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