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한국기술금융협회 IT 전문위원

 

“현대 정보기술, 즉 IT분야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기업은 어디일까?”라는 질문에 상당수 사람들은 IBM, 애플,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인 IT 대기업들을 유력하게 꼽을 것으로 의당 추측된다. 그러나 IT 역사를 잘 아는 전공자들, 해당 분야 전문가들로부터의 대답은 의외의 기업인 ‘제록스(Xerox)’를 꼽지 않을까 생각된다. 대부분 독자들이 ‘제록스’하면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복사기, 프린터일 것이다. “복사기, 프린터 등 사무자동화 기기 분야를 선도한 기업이 어떻게 IT 발전에 기여를 하게 됐을까?”라는 의문은 제록스의 연구개발(R&D) 전략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사무자동화와 같은 특정 분야 선도기업으로만 인식해온 제록스에 대한 선입견은, 그들이 IT 여러 분야에서 거둔 여러 성과를 들여다보면서 이 같은 선입견이 얼마나 편협된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제록스 역사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110여년 전인 1906년, 뉴욕 로체스터에 설립된 할로이드포토그래픽 컴퍼니에서 비롯되지만, 실질적인 출발은 조 윌슨이 본 회사의 이름을 ‘할로이드 제록스’로 변경한 1958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제록스’라는 이름의 출발은 그 당시 아무도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아 거의 사장될 뻔한 기술인 체스터 칼슨이 발명한 ‘전자사진술(Electro-Photography)’을 이용한 복사기 제조 특허를 사들이면서 본 기술을 활용한 ‘제록스 914’라는 제품을 출시하면서부터인 것이다.

제록스사는 발명자인 ‘체스터 칼슨’의 아이디어와 본 기술의 뛰어남을 포착하고 과감히 투자를 결정한 ‘조 윌슨’의 놀라운 안목이 탄생시킨 기업인 것이다. 특히 ‘조 윌슨’은 값비싼 복사기를 임대(Rental)해 주는 창의적 마케팅 방식으로 초기 구매비용에 대한 각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줌으로써 시장 파이를 늘렸고 이에 따라 획기적인 매출 향상을 이루게 됐으며,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러한 성장을 모멘텀으로 해 제록스는 1970년 자사의 연구개발센터인 PARC(팔로알토리서치센터)를 설립했다.

당시 컴퓨터 기술에 대한 미국정부로부터의 지원이 줄어들고 있는 틈을 타서 PARC는 높은 수준의 연봉을 무기 삼아 어렵지 않게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학자들을 영입할 수 있었다. 이후 PARC는 IT산업 성장의 물줄기를 바꾼 역사적으로 남을 만한 여러 가지 기술들을 연속해서 개발해 냈는데 레이저프린팅, 분산컴퓨팅, 네트워크 표준인 이더넷, 맥킨토시와 윈도(Window)의 모태가 된 GUI(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워드프로세서, 유비쿼터스 컴퓨팅 등이 그 대표작들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 세상의 물꼬를 터 준 여러 중요한 기술들 중 상당수가 제록스 R&D센터에서 개발됐다는 것은, 이들이 얼마나 연구개발에 열정을 쏟아 부었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역사적인 놀라운 기술 개발의 열매를 실제 제록스가 향유하지 못한 점은 제록스의 경영실패 사례와 더불어 아쉬움으로 늘 회자되고 있는데,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들 중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은 겨우 프린팅 관련 기술이 전부였다는 것이다. 즉 나머지 획기적인 기술들 대부분은 다른 기업에 이전돼 애플, MS(마이크로소프트), 3COM(쓰리콤) 등에서 꽃을 피우게 됐다.

당시 제록스는 성장가능성이 높은 미래 기술에 꾸준히 자원을 투입하는 등 최고의 연구개발 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PARC 연구원들도 기술 자체에만 집착하지 않고 상용화를 위해 애플리케이션을 함께 개발하는 등 비즈니스 마인드도 갖추고 있었으며, 장기적 안목으로 회사를 이끄는 훌륭한 경영진도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까?

제록스는 최고의 인재를 모아 내부적으로 기술역량을 축적하고, 이를 활용해 생산과 판매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직적 통합 구조로 성장을 구가했다. 바로 독점적 내부역량을 기반으로 한 폐쇄형 모델이었던 것인데, 제록스의 주력사업인 프린팅 산업에서는 이 같은 모델이 즉각 효과를 발휘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지만, 주력산업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다른 혁신기술들은 사업화 기회를 찾지 못해 신규 창업이나 벤처기업 등으로의 이동을 통해 해당 기술을 사업화했고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었다. 제록스에게는 아쉽지만 IT산업 발전 차원에서는 큰 걸음을 내디디게 한 사례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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