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청백리 김종순 선생, 청렴으로 고양시 물들이다
조선의 청백리 김종순 선생, 청렴으로 고양시 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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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8
‘2017 제11회 자랑스러운 고양인 공호공 김종순 선생 학술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8

‘공호공 김종순 선생 학술발표회’ 개최
김종순 선생, ‘자랑스런 고양인’ 선정
자손들도 양반관료로서 정치 생활해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육조 청백리 김종순 선생이 올해의 ‘자랑스런 고양인’으로 선정됐다. 충절의 고장인 경기도 고양시는 예로부터 지식과 덕을 겸비한 인물이 많이 배양됐다. 김종순 선생도 손꼽히는 인물이다.

이와 관련해 7일 ‘2017 제11회 자랑스러운 고양인 공호공 김종순 선생 학술발표회’가 마련됐다. 행사는 김종순 선생의 생애와 업적, 후손들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고양시 씨족협의회 이영찬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김종순 선생은 경주김씨 일문으로 세종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여섯 분의 이름을 모셨다”며 “특히 세조대에는 3년간 승지로서 세조를 보필하며 주요 국정과제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육조 청백리로서 녹선되신 매우 훌륭한 족적을 남긴 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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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순 선생 학술발표회에서 고양시 씨족협의회 이영찬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8

◆청백리 김종순 선생

‘16세기 경주김씨 계림군파의 형성과 김종순의 생애’를 주제로 발표한 한국학중앙연구원 나영훈 교수에 따르면, 김종순 선생은 개국공신 김균의 셋째 아들인 김계성의 장남이자 유일한 아들이다. 1405년(태종5)에 탄생했고 1483년(성종 14)에 77세의 나이로 졸하했다. 김종순은 개국공신인 조부와 효행으로 이름이 높은 외조부, 현달한 관료였던 백부를 두었지만 부친이 일찍 사망했기에 그 개인의 노력으로 자신의 관로를 개척해나간 인물이다.

김종순 선생의 생애는 계유정난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다. 계유정난 이후 김종순 선생은 세조의 측근으로서 세조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세조 당대에 수립된 여러 정책에 적극 참여하며 관료로서 현달할 수 있었다.

김종순 선생은 1461년 3월부터 1462년 1월까지 10개월을 도승지로 재임했으며 세조 연간의 핵심 사업에 적극 참여했다. 즉 호적 정리사업, 북방 대책과 사민 정책, 태안 굴포 등 토목사업이 진행됐는데, 이 중 김종순 선생은 호적과 북방 논의에 적극 참여했다. 이들 사업은 세조의 주요한 업적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었다.

김종순 선생이 경기관찰사를 지낼 당시에 세조가 경기도의 고을을 순행하다가 김종순 선생의 짐가방을 궁금해해 열어보니 쌀과 콩이 두어말 정도만 나왔다. 이에 임금이 김종순을 불러 술잔을 올리기를 명하면서 말하기를 “청렴하고 간소함이 너무 지나쳐서 관찰사가 거의 굶어 죽게 됐다”고 말했다.

즉 임금을 모시고 경기도 지역을 순행하는 관찰사가 지고 간 식량이 너무 적어 밥도 못 먹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 것으로, 이로 인해 김종순 선생이 얼마나 검소한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일화는 김종순이 청백리에 선정될 수 있었던 그의 성품을 알려주기도 한다. 실제로 ‘월성가사’에 보면 김종순 선생이 경기감사에 제수됐던 시기에 청백리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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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자들의 모습. 오른쪽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 나영훈 교수, 명지대 이근호 교수, 김종순 박사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8

◆김종순 선생을 잇는 ‘공호공파’

세조대에 정치적으로 크게 성장한 김종순의 영향으로 그 자손들도 역시 양반관료로서 정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특히 김종순 선생의 청렴한 기풍은 자손에게 그대로 전수됐다. 김종순 선생의 직계 후손 가운데는 문과 급제자도 많이 배출됐고 높은 관직을 역임한 인원도 다수 있었는데 가풍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선시대 경주김씨 공호공파의 정치사회적 동향’을 주제로 발표한 이근호 명지대 교수에 따르면, 김종순 선생을 잇는 계파인 ‘공호공파’는 16세기 ‘장원가(壯元家)’ 혹은 ‘삼대장원가(三代壯元家)’로 불렸다. 5세의 김천령, 6세의 김만균, 7세의 김경원이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이는 오늘날 고시패스와 같은 것으로 삼대(三代)가 문과에 급제한 것은 예삿일은 아니다.

김종순의 아들 김치운도 음서로 관직에 진출해 판관에 이르렀고 1466년(세조12) 고성별시에서 급제했다. 7~10세대에서는 거주지 분화 현상이 일어나고 서인(한당) 계열로 활동했다.

특히 11~15세대는 왕실의 외척가로 우뚝섰다. 당시 김주신은 과거 급제 후 순안현령 당시 딸이 왕비(인원왕후)로 간택되고 김주신은 영돈녕부사와 경은부원군으로 봉해졌으며 국왕 측근의 호위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김주신 딸이 재간택 대상이 되나 최종 간택되고 김주신은 영돈녕부사 경은부원군에, 부인 조씨는 가림부부인에 봉해졌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자랑스러운 고양인 선정패 증정이 진행됐고 박규동 고양문화원장, 김해병 경주김씨계림군계파종회 회장 등이 축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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