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세월의 짐은 가볍지 않지만 세월은 언제나 가볍게 날아간다. 2017년 역시 마찬가지다. 이 해에 실린 짐은 무겁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경험할 수 있는 것들도 아니었다. 세월의 마지막 꼬리가 어두운 과거의 터널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이 순간까지도 또 무슨 일이 일어나 우리를 긴장시킬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생각해보면 하루하루가 워낙이 이처럼 새로웠다. 이래서 뒤는 되돌아볼 틈조차 없던 한 해였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평범한 한 해는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2017년 세월의 강의 대안(對岸)이 몇 발짝 남지 않은 시점인 11월 15일 리히터지진계에 의한 계측치 5.4의 강진이 포항지역에 돌발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많은 이재민과 재산피해가 발생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학 수능 시험 날짜가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거기다가 크고 작은 여진(餘震)이 수시로 뒤따라 그로부터 경험한 쇼크(shock)와 놀란 가슴을 추스릴 여유조차 갖기 어려웠다. 그렇긴 해도 이만하기가 다행이다. 과거에도 산발적인 지진들이 있어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이 예고됐는데도 대비는 충분하지 않았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런 정도의 피해에 그친 것은 불행 중 행운이 아닐 수 없다는 말이다.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치고 연례행사로 벌어질 것이 빤한 일을 매년 되풀이 겪는 것은 우리의 게으름과 태만 때문이라고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겨울 철새가 병원체를 옮기는 조류인플루엔자 AI(avian influenza)로 우리는 매년 닭 오리 등의 가금(家禽)을 무더기로 살처분(殺處分)한다. 이번 겨울에도 벌써 수십만 마리를 애꿎게 땅속에 매몰했다. 이렇게 죽어가는 가금이 인간의 식용 동물이어서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애꿎은 생명을 무더기로 죽여야 하는 인간이 큰 죄를 짓고 있다는 가책이 앞선다. 가축은 인간이 돌보는 것이 당연한 의무이며 책임이다. 가축이어서 그 생명이 하찮은 것도 아니다. 인간은 인간의 수준에 근접하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만들어낼 만큼 지식의 꽃을 피웠다. 이런 지식수준이라면 무더기로 죽어가는 가금의 생명을 AI병원체의 감염쯤으로부터 구해내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다만 그러자면 먼저 우리는 무엇이든 쉽게 잊고 이내 게으름, 태만에 빠지는 버릇과 작별해야 한다는 것을 뼈아프게 성찰해야 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 것이 틀림없는 것이 사람의 귀중한 생명을 잃는 많은 사건 사고들이 망각에 의한 부주의로 되풀이 된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지난 2014년 4월 6일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해역에서 침몰해 30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대형 참사가 있었다. 이로 인해 해난 사고에 대한 우리의 경각심이 최고조에 달했었음에도 불법 부주의로 인한 크고 작은 해난 사고는 그치지 않았다. 급기야 올해에도 어김없이 몇 발짝만 더 내디디면 새해에 닿을 12월 3일 인천 영흥도 앞바다에서 22명이 탄 낚싯배가 유류운반선과 충돌해 침몰하는 바람에 1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우울한 연말 분위기를 조성했다. 사고의 원인은 적어도 아무리 불행을 경험해도 고쳐지지 않는 부주의, 여기서는 바로 운항부주의였다고 지적된다. 이렇게 해서 이 해의 꼬리가 아주 보이지 않을 때까지는 우리는 올해의 몫이 될 이 해의 숙명적인 짐에 대해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부주의와 망각의 늪에서 우리가 헤어 나올 수 있다면 반전(反轉)이 불가능할 거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처럼 올해는 끝까지 뜻밖에 새로 터지는 일들을 감당하기에 매일이 바빴던 한 해였다. 이 해 처음부터 그럴 조짐은 있었다. 그 조짐이 헌정사상 처음이며 엄중한 역사적 사변인 3월 10일의 대통령 탄핵이었다. 그 탄핵에 이은 정치적 빈터에는 밤을 밝힌 촛불 민심에 의해 새 정권이 들어섰다. 정치지형상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되는 대변혁이며 정치 혁명이었다. 이 사변을 능가할 2017년의 숙명적이며 역사적인 짐은 더 이상 우리에게서 찾기 어렵다. 자랑이 될 만한 것은 우리는 이런 정치적 지각 변동에 불가피하게 뒤따르는 혼란에 이성을 잃거나 우왕좌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뜬히 이를 극복해내어 국민의 저력을 입증하고 과시했으며 그만한 내공(內功)과 역량이 숱한 정치적 역경을 거쳐 오면서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길러져 간직돼 위기에 발휘됐다는 것이 뿌듯하다.

한편 이 해는 새로운 일만으로 우리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것만은 아니다. 북핵 문제, 그것은 구태의연하게 우리의 머리를 짓누르는 해묵은 걱정거리다. 해가 바뀌어 새해에는 나아질 거라는 확실한 희망도 없다. 북은 이미 가공할 위력의 수폭과 원폭을 워싱턴과 유럽에 실어 나를 사정거리 1만 3000㎞ 이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만들어 실험했다. 탐지가 어려운 잠수함에 탑재하는 탄도미사일 SLBM 개발도 속도를 낸다. 세계를 향한 북한발 핵 재앙의 예고다. 저들도 바쁘고 북핵을 저지해야 할 쪽도 시간에 쫓긴다. 이렇기에 만약 북핵 문제가 외교적으로 조만간 해결이 안 될 경우 세계가 결단코 북핵을 용납하지 않기로 한다면 한반도는 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이 해 마지막에도 정세의 고삐와 운전대를 움켜쥐지 못한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 허버트 맥매스터는 가장 최근에 북핵 문제는 ‘무력 충돌 없이 해결할 방법들이 있지만 김정은은 전쟁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북핵 문제는 파국을 향해 째깍째깍 시간을 재촉해가는 것이 된다. 오싹한 말임에도 등잔 밑의 우리는 너무 태연하다. 물론 허둥댈 필요는 더더욱 없다. 급할수록 침착해야 한다. 전쟁이냐 평화냐, 우리는 단연코 평화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평화를 원하기에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해 그 평화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 해는 평범하지 않은 일로 가득한 한 해였다. 그런 해의 마지막을 우리가 특단의 의지를 다져 그것으로 장식할 수 있다면 그 의미는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평화의 씨를 뿌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참으로 엄중한 시기다. God bless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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