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양력 12월 22일은 동지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동지가 속해있는 음력 11월을 동짓달이라 불렀다. 동지는 24절기의 스물두번째 절기다. 일 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하지부터 동짓날까지 낮은 점점 짧아지고 밤은 점점 길어진다. 반대로 동짓날부터 하지까지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진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동짓날부터 태양이 다시 부활한다고 믿어 설 다음가는 작은설로 대접했다. 오늘날까지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거나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고 여긴다.

중국 주나라에서도 광명이 부활한다고 생각해 동지를 설로 삼았다. ‘역경(易經)’에도 11월을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을 일 년의 시작으로 삼았다. 

우리나라는 신라에 이어 고려 충렬왕까지 동지를 설로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동지는 양력 12월 21일이나 22일 무렵에 든다.  

음력으로 동짓달 초순(초하루~10일)에 동지가 들면 애(기)동지(兒冬至), 중순(음력 동짓달 11일~20일)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하순(21일~말일)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부른다. 올해는 음력 11월 5일이라서 애동지다.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대신 수수팥떡, 팥밥을 해 먹는다.

애동지에 팥죽을 쑤면 아이들에게 팥죽을 끓일 때 생기는 기포 같은 피부병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다. 

노동지가 드는 해에는 어른들이 화를 입기도 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팥죽을 쑤어 어른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붉은 팥으로 쑤는 팥죽은 집안에 드는 재앙이나 잡귀를 물리친다고 여겼고 대문서부터 집안 곳곳에 팥죽을 뿌렸다.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진나라 공공씨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천연두 귀신이 되어 마을에 나타났고 마을 사람들이 천연두에 걸려 죽어갔다. 이에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팥죽을 쑤어 집안 구석구석에 뿌려 귀신을 물리쳤고 이후 동짓날에 팥죽을 먹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동짓날 풍속으로 관상감(觀象監)에서 새해 달력을 만들어 궁에 바치면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옥새를 찍어 백관에게 나누어 주었고 관리들은 서로 달력을 선물했다. 이 무렵 제주목사는 특산물인 귤을 임금에게 진상했고 임금은 신하에게 나누어주었다.

민간에서는 동짓날 부적으로 악귀를 쫓고, 뱀 ‘蛇(사)’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여 뱀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풍습이 있다.

동지 관련 속담으로는 ‘동지섣달에 눈이 많이 오면 오뉴월에 비 많이 온다’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이라’ ‘동짓날이 추워야 풍년이 든다’ ‘정성이 지극하면 동지섣달에도 꽃이 핀다’.  

한편 성탄절(크리스마스)도 초기 기독교가 페르시아 미트라교의 동지 축제일에 예수 탄생을 기념했다. 신약성서에 예수의 탄생 날짜 기록은 없다. 로마의 새턴네리아 축제가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열렸고, 그중 동지 뒤인 25일을 태양 부활하는 날로 삼았다.

이렇게 볼 때 성탄절의 기원은 동지인 셈이다. 

 

*<민속 이야기>의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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