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공연 사진. (제공: 오픈리뷰)ⓒ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6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공연 사진. (제공: 오픈리뷰)ⓒ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6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힘든 삶 속에서도 의지 저버리지 않아

정작 혐오스러웠던 건 그의 주변 인물들

[천지일보=이혜림·지승연 기자] 여혐(여성 혐오)·남혐(남성 혐오) 등 최근 이슈 되고 있는 단어가 ‘혐오’다. 혐오의 사전적 의미는 ‘싫어하고 미워함’이다. 모두가 싫어하고 미워했지만 누구보다 사랑스러웠던 여자의 일생을 담은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공연 중이다.

뮤지컬은 일본 소설가 야마다 무네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소설은 2007년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연출로 영화화됐다. 영화는 우스꽝스러운 표정, 과장된 행동과 경쾌한 음악 등 아이러니를 통해 주인공의 비극적 삶을 강조했으며, 슬픔과 비극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해학으로 풀어내 많은 팬을 양성했다. 소설·영화 팬이 많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한국에서 창작 뮤지컬로 재탄생됐다.

내용은 이렇다. 도쿄에서 백수 생활을 하는 ‘쇼’에게 아버지가 찾아온다. 아버지는 30여년 전 행방불명된 쇼의 고모 ‘마츠코’가 죽은 채 발견됐다며, 그의 유품을 정리하라고 말한다. 쇼는 이웃들에게 ‘혐오스런 마츠코’로 불린 고모의 아파트를 정리하면서 한번도만난 적 없는 마츠코의 일생에 들어간다.

마츠코의 일생은 처절하리만치 비극적이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아버지는 아픈 동생만 챙긴다. 힘든 청소년 시절을 보낸 마츠코는 바르고 착한 중학교 국어 교사가 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츠코는 학교에서 발생한 절도사건의 범인으로 누명을 쓰고 학교와 집을 떠나게 된다.

이후 여러 남자를 만나지만 이들은 하나 같이 마츠코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 마츠코는 남자들로부터 충격과 상처를 받고 정신이 피폐해진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마츠코는 마사지걸·살인자·노숙자 등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으로 변한다. 그 와중에도 그는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배우며 삶에 대한 의지를 저버리지 않는다.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공연 사진. ‘쇼’로 분한 배우 정원영이 연기하고 있다. (제공: 오픈리뷰)ⓒ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6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공연 사진. ‘쇼’로 분한 배우 정원영이 연기하고 있다. (제공: 오픈리뷰)ⓒ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6

 영화와 비슷한 연출을 기대하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영화에선 마츠코의 힘든 삶을 밝은 색채의 화면·음악 등과 매치한다. 뮤지컬에선 영화와 대비되는 단조롭고 어두컴컴한 조명과 슬픈 멜로디의 넘버 등으로 주인공의 우울한 내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뮤지컬에서는 조카 쇼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영화에서 쇼는 우연히 마츠코의 과거를 알게 된다. 반면 뮤지컬에서 쇼는 고모 주변 인물에게 먼저 연락해 그의 죽음과 일생에 대한 의문을 적극적으로 파헤친다.

쇼는 러닝타임 내내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 관찰자의 입장으로 관객과 함께 울고 웃는 쇼 덕분에 감정이입이 더 잘 된다.

뮤지컬은 ‘사랑스럽던 한 여자의 잔혹한 질주’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혐오의 사전적 반대말은 사랑이다. 그의 삶은 ‘이제 제발 그만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잔혹하고, 불행이 연속된다. 그럼에도 마츠코는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려한다.

‘마츠코’가 동생 ‘쿠미’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장면. 삐뚤어진 사각형 세트는 마츠코가 어릴 적 살았던 집으로 활용된다. (제공: 오픈리뷰)ⓒ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6
‘마츠코’가 동생 ‘쿠미’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장면. 삐뚤어진 사각형 세트는 마츠코가 어릴 적 살았던 집으로 활용된다. (제공: 오픈리뷰)ⓒ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6

 제작진은 무대 조형물로 마츠코의 삶이 평탄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게 연출했다. 무대 정중앙에 있는 삐뚤어진 네모 모양의 조형물은 마츠코의 아파트와 일하던 마사지 숍 등 그의 일생과 밀접하게 관련된 곳으로 활용된다. 관객은 균형이 맞지 않는 무대장치를 보고 심리적인 불안감을 안은 채 극을 관람한다.

이 작품은 개막 당시 여배우 주연의 뮤지컬로 주목받은 바 있다. 아직까지 뮤지컬 시장엔 여배우 주연의 작품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로 분한 가수 아이비가 넘버를 부르고 있다.(제공: 오픈리뷰)ⓒ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6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로 분한 가수 아이비가 넘버를 부르고 있다.(제공: 오픈리뷰)ⓒ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6

 지난달 21일 공연의 주인공 마츠코 역은 가수 아이비가 맡았다. 아이비는 순수했던 마츠코부터, 팜므파탈 마츠코, 이성 잃고 미쳐 날뛰는 마츠코까지 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다양한 모습을 표현한다.

주인공뿐 아니라 다른 주·조연과 앙상블의 연기도 안정적이고 인상 깊다. 특히 이날 공연에 선 배우 정원영과 정다희는 놀라운 연기를 선보였다. 정원영은 극 초반에 마츠코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바라만 보는 쇼를 연기한다. 후반에는 마츠코에게 동화돼 포효하고 오열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츠코의 친구 ‘메구미’를 연기한 정다희는 극에서 가장 화려한 노래와 춤을 선보인다. 그는 쇼와 통화하는 장면에서 “로비에서 가장 멋있는 여자를 찾아”라는 대사를 하는데, 이에 걸맞게 여자가 봐도 반할 정도로 멋진 여성을 연기한다.

마츠코의 일생이 끝나고 관객은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그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돼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내년 1월 7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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