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안이 법정시한을 넘긴 게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첫 사례라는 불명예이긴 해도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준예산’의 위기를 초래하지 않았으니 한숨 돌렸다. 자유한국당의 이견이 있으나 내년도 예산이 합의됨에 따라 정부에서는 본격적인 경제정책 추진 동력을 얻게 됐다. 이번 예산국회 처리과정을 볼 때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준 대야 협상력은 원만하지 못했다. 공무원 증원 등 핵심 사안에 대해 유동성을 가지고 선제적으로 협상할 수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라며 신축성을 보이지 못했던 것은 매끄럽지 못한 태도였다.

역대 예산국회를 보면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가진 때에도 여야가 한 치 양보 없는 정쟁에 묻혀 늘 시끄러웠다. 국회선진화법이 마련된 이후 국회사정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예산안이 11월 30일까지 여야 협상이 안 될 경우 12월 2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는 장치는 마련됐으나 여소야대 상황에서 쉽게 통과된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처럼 예산 법정시한 내 본회의에 부의되긴 했지만 통과된다는 보장이 없었으니 여당은 안건으로 상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예산국회가 순탄치 못하리라는 점을 예상하고 야당이 협상에 응할 수 있는 객관·타당한 내용을 제시해야 했건만 그렇지 못했다. 결과론적이지만 이번 예산국회의 공훈을 새기자면 정부쪽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고, 국회 쪽은 국민의당이다. 김 부총리는 예산국회 일정 내내 원내 지도부를 찾아다니며 설명하고, 상임위원회와 예결위 위원들에게 예산 협력을 읍소했다. 또 국민의당에서는 문제되는 사안, 특히 공무원 증원 수치에 있어 자연증가분과 경찰, 소방 등 현장 필수 인력을 감안해 객관적인 대안을 마련해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압박한 것이 3당 합의에 쉽게 도달했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야당이 예산을 빌미삼아 몽니 부리던 시대는 끝났다. 여야가 어떤 내용을 협상하고, 극한 대립하는 사안의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국민은 훤히 알고 있는 것이다. 삼권분립 하에서 국회가 정부정책에 협력해야 하지만 독단을 견제할 책임을 갖고 있다. 그렇게 볼 때에 비록 예산안이 법정시한을 사흘 넘기기는 했으나 막판에 3당의 조정 합의는 시사점이 크다. 그 한편에 원내 제3당이 여당과 제1야당의 극한 대립 국면에서 객관적인 자료와 합리적 대안으로 조정 역할을 수행해내고 협치 모델을 만들어낸 결과라 할 것이다. 앞으로 정치의 장에서, 여소야대 상황에서 의정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를 보여준 좋은 교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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