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세월호 사고에도 불구, 재난대응 시스템 개선에 대한 낙관은 금물이었다. 물론 사고의 교훈으로 해난사고 자체를 없앤다거나, 재난 사고 때 인명을 다 구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바뀐 게 무언가. 재난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가. 답은 분명했다. 안전불감증. 세월호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배를 타고 어디 다니기조차 두렵다. 인천 영흥도 해역 낚싯배 추돌·전복 사고에서 드러난 부실한 대응이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한다. 그 참담한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한국은 여전히 부끄러운 나라다. 300여명의 사망·미수습자가 발생한 진도해역이 그리 쉽게 잊힐 일은 아니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악몽처럼 머릿속에 존재하는 참담한 세월호 사고의 트라우마. 2014년 4월 16일의 비극을 다시금 반추하며 우리 모두 철저하게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이 문제였다. 선장은 항해하는 배 위에서는 대통령이나 마찬가지다. 고의건, 과실이건 선장의 실수는 치명적인 위험을 부른다. 배가 문제였다고 하더라도 선장이 지혜롭게 행동했다면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 재난전문가도 초동 지휘를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또한 시스템도 중요하다. 배가 전복될 때 비상벨이 울리거나 비상탈출 권유방송이 자동으로 나오게 갖춰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5분대기조’가 공항이나 공군부대에서 상시 대기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세월호에 갇힌 학생들의 전화신고를 받은 119 소방관서에서 전국의 모든 헬기를 현장에 신속히 급파했다면 어땠을까. 즉시 해난구조대를 실은 구조함을 보낼 수 있는 체계가 갖춰졌다면 어땠을까(중략)…” (‘한병권의 느낌표’, 2014년 5월 13일자)

세월호 사고 때 ‘배, 사람, 시스템, 모두 문제였다’라는 제목으로 필자가 쓴 글이다. 이번 사고에도 글의 뼈대는 그대로 적용된다. 세월호 이후 하나도 개선되지 않은 안타깝기 짝이 없는 현실이다. 정원 5명의 어선을 22명까지 태울 수 있는 낚싯배로 개조했다. 별도의 출입구가 없거나 조타실 출입구를 이용하고 있어 사고 시 탈출로 확보가 어려웠다. 물고기 보관 창고를 객실로 바꾸면서 세월호처럼 선박의 복원력이 약화됐다. 낚싯배로 영업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주고 안전관리가 미흡해 화를 키웠다. 사고의 발단은 위험이 늘 존재하던 협수로에서의 항해부주의였다. 선장이 전방을 잘 살피고 속도를 조절하고 경고등을 표시하고 기적을 울리며 충돌예방조치를 취해야 했다. 마치 좁은 도로에서 경차를 운전하고 있는데 대형화물차가 난폭운전을 하며 뒤에서 갑자기 추돌한 모양새였다. 배 추돌사고 해역은 사각지대였다. 해상교통감시통제 대상에서도 빠져 있었다는 후문이다.

무엇보다도 현장의 구조대응상황이 좋아진 게 없었다. 세월호 사고 때 ‘잃어버린 7시간’이 거론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림머리 단장을 포기하고 달려가 현장 총지휘를 했더라면, 민방위 복장에 모자 하나 눌러쓰고 헬기타고 도착해 인명구조를 신속히 독려했더라면 하는 견해들이 있었다. 그러나 재난 때마다 일일이 대통령이 나서 현장지휘를 해야 한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 실무차원의 해난구조 시스템이 매뉴얼대로 적절히 가동돼야 한다. 이번에도 해경경비정은 출동할 고속보트가 없어 출발시간이 지연됐다. 수중구조가 가능한 특수구조대의 파견도 지체되고 장비의 문제까지 발생했다. 이에 따라 골든타임을 또 놓쳤다. 구조대의 신형보트가 고장 나 민간선박을 얻어 타고 사고해역으로 가는 과정이 72분이나 걸렸다. 뒤늦은 수중작업으로 많은 승선원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무엇이 세월호 때보다 나아졌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아쉬운 것이 24시간 대기하는 상설 ‘5분대기조’의 부재다. 군필자들은 경험한 것이지만 각급 군부대엔 특수상황발생 시 5분 안에 먼저 출동해 상황을 파악하거나 응급조치로 대응하는 ‘5분대기조’가 있다. 세월호 사고 때 이미 일본과 같은 상설 비상출동대기조의 필요성이 거론됐다. 재난대응을 위해 공항과 항구 등에 운영하고 있는 외국의 성공적인 비상출동대기조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낮이건 밤이건 항상 신속한 구조에 나설 수 있는 이동수단과 첨단장비, 인력, 교육훈련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상시 출동 및 재난대응 시스템이 세워져 있어야 한다. ‘낚싯배 참사’에서 드러난 재난대응 시스템의 고장 역시 과거의 적폐가 아니겠는가. ‘적폐청산과 비정상의 정상화’, 감동 없고 다가오지 않는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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