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추기경(왼쪽 두 번째)이 3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반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에 참석해 서명한 뒤 6개월 반이 된 태아의 인형을 안아보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염수정 추기경(왼쪽 두 번째)이 3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반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에 참석해 서명한 뒤 6개월 반이 된 태아의 인형을 안아보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정부는 임신중절 실태조사… 헌재의 판단은
여성단체들 “자기결정권 침해 法 개정해야”
종교계 “약한 생명에 가하는 폭력·살인행위”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낙태죄 폐지 여부를 두고 찬반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폐지에 찬성하는 측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며, 반대하는 측은 태아의 생명권을 강제로 빼앗는 살인행위라며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도입이 필요하다’는 국민청원에 청와대는 지난달 말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하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태아의 생명권은 매우 소중한 권리이지만 처벌 강화 위주 정책으로 여러 부작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정부는 내년에 임신중절(낙태) 실태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보건복지부에 예산이 책정된 상태다. 헌법재판소(헌재)도 이달 7일부터 낙태죄 위헌 법률 심판사건에 대한 집중 심리에 들어간다. 법조계에선 내년 2~3월 중 낙태죄 관련한 판단이 내려질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앞서 헌재는 2012년 낙태죄에 대해 합헌 4 대 위헌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중립·진보 성향의 재판관이 더 많아진 상황에서 내년 낙태죄 위헌 심판과 관련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위헌 결정이 나오려면 헌재 재판관 9명 중 최소 6명이 위헌 의견을 내야 한다. 정부는 입법부 차원의 논의와 함께 임신중단 관련 보완대책 등도 세울 계획이다.

현행법상(모자보건법 제14조) 낙태는 강간·성폭행과 친족 간 임신, 유전·전염성 질환 등 특수한 경우에 법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외에는 형법 269·270조에 따라 낙태죄를 처벌하고 있다. 낙태로 적발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여성시민단체들은 낙태에 대한 모든 책임이 여성에게만 있는 현행법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해 불법적으로 있어지는 임신중절 수술도 약 16만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시민단체들은 최근 ‘낙태죄 폐지를 향한 청와대의 전향적인 입장표명을 환영한다’는 논평을 냈다. 이들은 “낙태죄는 여성의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다. 형법상 낙태죄 폐지를 비롯한 법규 개폐 논의가 신속하게 진전돼야 한다”면서 정부를 향해 “헌재 심판, 입법부 논의, 보완대책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일정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국민청원을 계기로) 여성만 오롯이 책임지는 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시작됐다”며 “새로운 균형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여성들의) 권리 보장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활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천주교와 개신교 등 종교계는 ‘낙태죄 폐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천주교는 지난 3일부터 전국 16교구에서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100만인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첫 번째로 서명했다.

염 추기경은 이날 제10회 생명주일미사 강론에서 낙태 합법화 움직임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생명은 스스로 보호할 힘이 없는 약한 생명”이라며 “일각에서 낙태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소리에 우려가 크다. 낙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에 대한 끔찍한 폭력이자 일종의 살인행위”라고 지적했다.

개신교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도 “수정 순간부터 시작되는 모든 인간 생명을 파괴하는 행동은 살인행위”라며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고 있다. 관련 현안에 대한 청와대 답변이 “반생명적 관점이 담겨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최근 입장문에서 “형법상 낙태죄 처벌 조항은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유일한 법적 안전장치”라며 “이 안전장치마저 제거하면 우리나라 법률의 어떤 조항에서도 태아의 생명권은 보호받을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시민단체와 종교계의 찬반 논쟁이 내년에는 더욱 가열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부와 헌재, 국회에서 어떠한 결과를 끌어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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