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역사탐방] 대한제국 황실가족 잠든 남양주 ‘홍유릉’
[내고향 역사탐방] 대한제국 황실가족 잠든 남양주 ‘홍유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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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재를 아는가. 지역마다 선조들의 삶이 지명과 문화재 등을 통해 잘 남아 있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있어 역사적 가치를 덜 인지할 수 있다. 이에 각 지역에 남아있는 문화와 역사의 소중함을 알아보는 내 고향 역사탐방을 함께 떠나보려 한다.

침전과 홍릉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3
침전과 홍릉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3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한반도 역사상 마지막으로 조성된 왕릉이자 유일한 황릉인 ‘홍유릉(洪裕陵)’.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해 있어 서울에서도 찾아가기 쉽다. 홍유릉은 홍릉과 유릉을 합쳐서 부른 말이다. 이곳은 조선의 쇠망과 근대 격동기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잠들어 있는 조선왕릉이다.

◆고종·명성황후 잠든 홍릉

홍살문을 지나 침전에서 바라보면 홍릉(洪陵)이 멀리 보인다. 겨울이라 흰 눈이 소복이 쌓인 능은 유난히 더 고요했다. 홍릉은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인 고종과 명성황후를 합장해 모신 능이다.

1919년 3월 3일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에 고종황제의 재궁(임금의 관)이 경운궁을 떠났다. 그리고 이곳 남양주 홍릉에 도착했다. 원래 고종은 명성황후가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목숨을 잃은 후 처음에 그 능을 동구릉 안에 조성하고자 했다. 하지만 국내외의 복잡한 사정으로 제대로 조성하지 못했다.

1897년 10월 명성황후를 대한제국의 황후로 높이고 같은 해 11월에 능 이름을 홍릉으로 새로 정해 서울시 청량리에 묘소를 마련했다. 명성황후의 청량리 홍릉은 조성 직후부터 석물에 문제가 발생했다.

재실에서 바라본 홍릉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3
재실에서 바라본 홍릉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3

1900년부터는 풍수상의 문제로 능을 옮기자는 의견이 분분했다. 이에 고종은 경기도 남양주 금곡 지역을 새 능역으로 정해 황제국의 위상에 걸맞은 능제를 마련하고자 했다. 금곡 홍릉은 고종 생전에 완성되지 못하다가, 1919년 고종 승하 후 명성황후와 합장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특히 홍릉은 기존 조선왕릉의 형식과 다른 대한제국 황제릉의 형식으로 조성됐다. 이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명나라의 황제릉을 인용하고 기존의 조선왕릉을 계승해 개혁한 형식이다.

능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르고 혼유석, 망주석, 장명등을 설치했다. 기존의 능침공간에 있던 석물(석양, 석호, 문무석인)들은 제향 공간 앞으로 배치하고, 종류와 개수를 늘렸다.

유릉의 침전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3
유릉의 침전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3

◆순종, 왕후들 잠든 유릉

유릉(裕陵)도 있다. 유릉은 27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2대 황제인 순종과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를 모신 능이다. 이곳은 조선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세 명을 하나의 봉분에 모시고 있다.

순종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아들이다. 1897년 대한제국 수립 후 황태자에 책봉됐고 1907년 대한제국 제2대 황제로 즉위했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과 강제로 합병되자 순종은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고, 1926년 창덕궁에서 눈 감았다. 순종의 승하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항일운동인 6.10만세운동이 일어난 중요한 계기가 됐다.

순종의 첫 번째 황후인 순명효황후는 1904년 순종이 황제로 즉위하기 전에 사망했고, 본래 무덤은 서울 광진구에 조성됐다가 순종 승하 후 유릉으로 옮겨졌다. 둘째 황후인 순정효황후는 1906년 황태자비로 책봉됐고, 1907년 순종 황제 즉위와 함께 황후로 책봉됐다. 1966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사망했고 현재 유릉의 마지막 안장자가 됐다.

유릉 능역 내에는 두 기의 어정(우물)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그중 금천 주변의 어정은 둘레석만 남아 있다.

덕혜옹주 묘ⓒ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3
덕혜옹주 묘ⓒ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3

◆영친왕과 덕혜옹주 묘

인근에는 영원(英園)도 있다. 이곳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부인 이방자의 묘다. 입구에는 재실이 있고 묘역에는 나지막한 담장을 두르고 있다. 그 안에 봉분과 석물을 조성했다. 홍릉과 유릉에 비해 규모는 작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의 묘도 있다. 원래 이곳은 비공개였으나 지난 5월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덕혜옹주 묘는 평범했다. 덕혜옹주는 고종의 늦둥이 딸이다. 어린시절 고종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지만, 고종 승하 후 일제에 의해 굴곡진 삶을 살게 된다. 귀국 후에도 지병으로 고생을 하며 불운한 삶을 살았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 전하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 대한민국 우리나라’

이는 덕혜옹주가 정신이 맑을 때 썼다는 낙서 한 장이다. 조선 황실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싶어하는 덕혜옹주의 마음은 당시에 작성된 글이 대신 말해주고 있는 듯 했다.

능역 내의 어정(우물)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3
능역 내의 어정(우물)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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