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일찍 찾아왔나 싶더니 월드컵의 열기마저 가세해 한여름을 실감케 하는 요즘이다. 인터넷상에서 한국축구팬들 사이에 회자되는 글 가운데는 일본축구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알 수 있다. 축구팬뿐만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 언론 역시 각국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참 기이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며 14일 밤 E조 두 번째 경기인 일본과 카메룬전을 지켜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과 달리 참으로 이상한 심적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내 마음 속에서 일본이 이기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정녕 변화였다.

그래서일까. 외로운 듯, 초라한 듯, 애타는 듯 경기모습을 응시하던 오카다 감독의 두 손이 한순간 불끈 쥐어졌다. 그것은 전반 38분, 마쓰이 다이스케가 우측에서 크로스한 볼을 골문으로 파고들던 혼다 케이스케가 침착하게 득점으로 연결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 골은 아프리카의 강호 카메룬을 누르고 조 2위로 올라서는 데 결정골이 된다.

한국축구팬들의 응원의 결과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순간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아시아인이 아시아인을 응원하며, 이웃나라를 응원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그동안 서로는 왜 지기를 바라야 했고, 미워하고 증오해야만 했을까. 모르는 사람이 없는 질문을 필자는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불명예스러운 이 말을 뗄 날은 과연 없을까. 지금 축구팬들로부터 일어나고 있는 양국의 고무적인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에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선 한국팬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 동기가 뭘까. 그것은 아마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짓밟던 나라,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나라, 표면적으로 경제 군사 스포츠 등 모든 게 우리보다 나아보였던 나라, 아니 무조건 미워하고 싶기만 했던 나라, 하지만 이 모든 우위를 내줘야 하는 일본의 현실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발동하는 동정심은 아닐까.

그렇다면 일본이 우리를 응원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양심적 일본인으로부터 시작한 바른 생각이 작용하기 시작했으며, 이웃 한국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증표인 것이다. 즉, 한국이 모든 면에서 뒤지지 않는 나라, 우수한 민족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양국은 거짓과 시기와 저주에서 벗어나는 숙명적 기회를 맞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정치도 경제도 군사력도 이념도 그 무엇도 아닌 스포츠를 포함한 문화와 사랑으로 말이다.

특히 아사히, 요미우리 신문 등은 한국과 그리스전을 대서 특필로 소개하면서 ‘사상 최강의 2010년 코리아!’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문지기까지 빼돌린 박지성’이라 북한 언론까지 극찬을 했으니 말이다.

김연아를 통해 칭찬과 극찬을 애써 조심스럽게 다루려던 일본 언론과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이번 그리스전을 통해 속내를 숨길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이젠 모든 면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2010 庚寅年은 ‘서기동래(西氣東來)’의 원년이라 했다. 이 말은 약 이천년을 지배해온 서구의 강렬했던 기운이 이젠 쇠하고, 그 강렬했던 기운이 동방으로 이동해 온다는 의미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서구의 물질문명이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해 왔다면 이젠 물질이 아닌 정신이 지배하는 온전한 지구촌을 건설해 가는 그러한 시대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한반도가 있다. 피겨스케이팅을 포함한 유럽의 스포츠는 서구 유럽의 몫으로만 여겨졌던 감히 넘볼 수 없는 철옹성과 같은 종목이요 대상이었음을 고백해야 한다.

이젠 외려 그들이 떨고 있으며 부러워한다. 그리고 존경한다. 이러한 승리는 정신문화의 승리다.

백호같이 맹렬한 기운이 질주해 오는 이때를 직시하고 아시아의 책임이 얼마나 크고 중한지를 깨닫기를 이 시대가 명령하고 있다.

이제 아시아는 과거와 같이 물고 물리는 약육강식의 험난한 시대, 아둔하고 어리석은 시대를 청산해야 한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와 조류를 따라 아시아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깨닫고, 이번 월드컵 경기를 통해 양국 축구팬들과 언론의 긍정적 분위기를 몰아 화합과 상생의 물꼬를 트는 좋은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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