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 (사진제공: 문화재청)

기마문화, 북규슈로 유입된 시기 서기 2세기경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한일 역사학계에서 우리나라의 말(馬) 문화가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이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홍윤기 한국외대 교수는 “고조선 부여족은 고대 부여(고조선의 고대 만주)로부터 한반도까지 세력을 뻗쳐 남쪽으로 내려온 것”이라며 “다시 세력을 확장한 곳은 바로 바다 건너 섬나라 왜국”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고고학자 미카미 쓰구오도 “일본 국가를 만든 주체 대부분은 수렵민족인 부여, 곧 기마(騎馬)민족일 것”이라며 “기마민족이 한반도로부터 북규슈로 유입된 시기는 서기(BC) 2세기 경”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와 미카미 학자 및 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본래 기마민족이다. 기마민족은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면서 부여(夫餘)였던 만주벌판을 달렸다. 부여는 고조선시대 한국인들이 거느리던 광대한 국토였다. 그 중에서도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는 인물은 주몽(朱蒙)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동부여의 금와왕의 왕궁에서 주몽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말을 타고 남쪽으로 향해 졸본주에 도착했다. 이곳을 기점으로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고구려’라고 명명했다. 이로부터 400여 년 뒤 부여, 옛 국토를 회복하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대고구려시대의 문을 연 것.

한국인이 말을 잘 타는 기마민족이라는 사실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기마도 등 말을 다루는 여러 그림들이 증명해 준다. 고구려뿐만 아니라 가야·신라·백제 유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고대 신라인들이 사용했던 각종 마구 장식을 살펴보면 비단벌레 장식의 안장 받침대 외에도 경주 천마총(天馬冢) 등이 있다. 홍 교수는 “신라 역시 고구려, 백제와 더불어 만주 벌판을 누비던 한 핏줄의 기마민족임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92년에는 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에서 말갑옷이 출토돼 가야인 역시 기마민족임을 확인할 수 있다. 말갑옷은 생선비늘처럼 생긴 네모난 쇠조각들이 한 쪽에 340여 쪽이 엮어진 무쇠 철비늘로 이뤄졌다. 이는 전쟁터에 나가는 말의 몸을 둘러 적의 화살이나 창검에 찔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말갑옷이다.

홍 교수는 “우리 민족은 군마(軍馬)를 아꼈던 기마 민족”이라며 “가야 고분에서 발견된 말갑옷은 옛날 고구려 고분인 평남 용강의 쌍영총(雙楹塚)에 그려진 말갑옷과 똑같다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부여와 한반도를 거느렸던 기마민족은 바다 건너 섬나라 왜국까지 세력을 넓혀 나갔다.

실제로 1990년부터 발굴조사가 이뤄진 김해 대성동고분군에서 환두대도(環頭大刀) 등 무기류 및 갑주류(甲胄類) 등 기마와 관련된 유물과 함께 파형동기(巴形銅器)·벽옥(碧玉)류 등 왜(倭) 계통의 유물들이 출토됐다. 당시 가야와 일본이 교류하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의 저명한 고고학자 故 에가미 나미오는 “한반도 기마민족이 왜나라를 정복해 또 다시 새로운 국가를 만들었다”며 “북방 기마민족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 야마토(大和) 정권을 성립시킨 주역”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근래에만 주장된 것이 아니다. 이미 에도(江戶)시대에도 기마민족설이 제기됐다. 18세기 고증학자 토우 테이칸(1732~1797)은 “일본인 대부분은 백제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