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의혹 수준이지만 정말 더 이상 믿고 싶지 않은 얘기이다. 서울중앙지검이 밝힌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새로운 의혹사건은 국정원 해외공작금까지 사적으로 유용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검찰이 전하는 내용을 보면 원 전 원장이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던 2011년 말부터 2012년 초까지 국정원의 해외공작금 200만 달러를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을 경유해 미국 스탠퍼드대의 한 연구센터로 보냈다는 것이다.

만일 사실이라면 이 또한 엄청 충격적인 내용이다. 국정원의 내밀한 해외공작금을 공적 기관을 경유해 마치 합법적인 것처럼 가장해서 그 돈을 사적인 목적을 위해 빼돌리려 한 것이기 때문이다. 2013년 초 원세훈 전 원장이 퇴임할 때가 뚜렷하게 기억된다. 퇴임하자마자 미국으로 출국하려 했으며 다행히 이를 포착한 검찰이 출국금지를 하는 바람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그때 원 전 원장이 자신의 계획대로 스탠퍼드대로 가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검찰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퇴임을 하자마자 출국하려는 것 자체부터 상식 밖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퇴임 1년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했다는 뜻 아니겠는가.

검찰은 이번 의혹 사건도 먼저 진상부터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 사안이 간단치 않을 뿐더러 자칫 무차별적인 의혹까지 재생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장이 이런 일을 했다면 누가 믿겠는가. 사실이라면 단순한 ‘개인비리’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국정원에도 조력자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거액의 뭉칫돈 흐름을 금융당국이 몰랐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청와대로 관련 정보가 들어갔을 개연성도 높다. 비록 개인비리라 하더라도 다수의 관계자들이 연루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모든 과정을 당국도 몰랐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검찰은 원세훈 전 원장이 2013년 퇴임 이후 스탠퍼드대에 객원연구원으로 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대학에서 적절한 자리를 얻기 위해 국정원 자금을 빼돌려 기부하게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탠포드 대학으로 수사관을 보내 관련 서류와 정황을 확인해야 한다. 명문 사학 스탠포드 대학도 명예가 걸려있는 문제인 만큼 협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여의치 않아 원 전 원장이 수감생활을 다 마치고 나서 그 때 다시 스탠포드로 떠나도록 한다면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가 이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200만 달러라면 적은 돈이 아니다. 그 돈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 쓰였는지 또한 어떤 용도로 미국으로 흘러갔는지 국민은 궁금하다. 국정원은 매년 5천억원 안팎의 특활비를 받는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비밀스럽게 사용해 달라는 뜻으로 영수증 처리도 대부분 생략되는 혈세다. 그런데 그 돈을 ‘눈먼 돈’처럼 나눠먹거나 개인적으로 빼돌린다면 사실상 ‘이적행위’와 뭐가 다르겠는가.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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