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포항지진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현재 모두 67차례다. 물리적인 여진보다 더 큰 여진이 우리 사회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경주지진 때는 보지 못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러 건물이 금이 가거나 기우뚱 했다. 경주지진 때도 단층짜리 건물이 부서지거나 건물 외벽이 무너진 모습은 여기저기 눈에 띄었지만 집합건물이 기운 것은 포항지진 때가 처음이다. 특히 1층을 주차장으로 쓰는 필로티 건물의 기둥이 부서지거나 엿가락처럼 휘고 건물이 기운 탓에 주민들이 대피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필로티 건물이 ‘큰 위험을 동반한 건물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필로티 건물 자체의 문제일수도 있지만 내진설계와 시공이 제대로 안되어 생긴 문제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동시에 내가 사는 필로티 건물은 안전한가, 혹은 내 자식과 부모님, 내 이웃이 사는 필로티 건물은 안전한가 묻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포항의 ‘필로티 건물’은 한국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많은 국민들이 필로티 건물의 내진 설계 과정에 부정과 비리, 불합리가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됐다. 다른 건물은 안전한가 하고 묻게 됐다.  

하지만 정부가 필로티 건물의 안전도를 전수조사 한다거나 1층 기둥에 대한 보강 공사를 독려한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문제가 터지면 장관이 달려가고 대통령 또는 유력 정치인이 나타나지만 여전히 거기에서 멈춘다. 국회도 필로티 건물의 내진 설계 체계와 안전에 대한 법적 대책을 내고 사회적 여론을 모아내려는 치열한 몸짓을 보여야 마땅한데 관심을 보이는 정당이 없다. 전현희 의원 같은 이는 토론회를 주최했지만 대부분의 의원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최근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탈핵에너지전환국회의원모임’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포항지진 이후 원전에 대한 국민들 여론이 움직였다. 무려 3분의 1에 이르는 사람들이 원전 안정성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지진에 따른 직접적 피해보다도 원전사고 2차 피해를 더 우려했다. 자연재난에 대한 원전 안전성 인식에서는 안전하다는 인식이 36%인데 비해 안전하지 않다가 56%로 현격한 차이가 났다. 원전정책 우선순위로 안전기준강화가 38.2%, 노후 원전 조기폐쇄가 31.9%였다. 경주, 포항지진 이전에는 원전은 안전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었는데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원전마피아로 불리던 ‘원전 세력’의 효과적인 여론전에 국민들이 휘둘렸다는 진단이 많이 있었다. 초중고 교과서도 원자력 에너지는 청정에너지, 원전은 고마운 존재라고 주입시켰고 주요 방송과 신문도 같은 논조를 고집해 온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자세가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국민촛불의 힘으로 정권이 교체된 현 시기에 원전의 실상과 안전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공론의 장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방송 또한 원전의 ‘좋은 점’을 일방적으로 홍보할 것이 아니라 문제점을 제대로 전달하고 ‘원전이 없는 나라’를 지향하는 나라의 사례도 충분히 소개하면 좋을 것이다. 

1997년 7월에 쓰인 한겨레신문의 기사는 마치 경주지진과 포항지진을 경고해 주는 듯하다. 기사에서는 포항, 경주 일대가 단층지대라는 것으로 앞으로 지진이 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경북대 장기홍 교수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는데 장교수는 ‘울산 – 포항 사이는 지질학적으로 아주 취약한 지대’라고 말하고 있다. 기사 이후 20년이 흘렀다. 우리 사회가 언론과 전문가의 견해에 귀 기울였다면 동남쪽 일대에 원전이 줄줄이 지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혜공왕 때 경주에 지진이 나 가옥이 파괴되고 100여명이 사망했다. 지진에 취약한 경주, 포항 일대에 원전을 수두룩하게 지어 놓고 안심하고 먹고 자는 것은 거대한 폭탄을 머리에 이고 불 숲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노후 원전부터 즉시 폐쇄하고 신규 원전은 짓지 않아야 한다. 가동 중에 있는 원전은 안전성을 대폭 높이는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수명보다 앞당겨 폐쇄 로드맵을 짜야 한다. 공론화를 거쳤다고 하지만 안전의 관점에서 보면 신고리 원전 3,4호기도 건설을 중단하는 게 맞다. 안전 문제는 일부 국민이 다수결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포항지진으로 파괴된 건물에 출입금지 조치가 이루어졌는데 대피했던 주민들이 다시 들어와 살고 있다. 다른 곳에 살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일 테지만 오싹한 일이다. 지난번에 일어난 포항지진보다 더 큰 지진이라도 난다면 그 건물에 다시 들어가 사는 사람들의 안전은 누가 보장할 것인가. 안전하지 않은 건물이라고 줄만 쳐 놓을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실질적인 주거대책을 세우고 출입을 철저히 통제해야 할 것이다. 

암담한 뉴스가 또 있다. 위험판정을 받은 건물의 철거가 미뤄지고 있다. 철거 비용이 없다고 한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 난 거고 안전 문제가 절박한 상황인 점을 생각할 때 철거비용 전액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철거 방식을 두고 결정을 못하고 있다 한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되 신속히 철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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