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연극 ‘오래된 편지’ 공연 장면. ‘권정생(최우성 분)’이 아이들과 책을 읽고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1.23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연극 ‘오래된 편지’ 공연 장면. ‘권정생(최우성 분)’이 아이들과 책을 읽고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1.23

어른의 시선 아래 아이들 가두지 않은

두 아동 문학가의 삶 담백하게 표현해

[천지일보=지승연] “동시란 것은 어른들의 관념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이들의 시는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생활의 표현이어야 하고, 소박하고 현실적인 감동으로 쓰여야 한다.”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이 1963년 6월에 쓴 일기 중 일부다. 이오덕은 43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일본어 문체에 물들어버린 우리말과 글을 바로 잡는 교육에 힘써온 교육자다. 그는 ‘강아지똥’ ‘몽실언니’ ‘한티재하늘’ 등 아동을 위한 동화·동시·산문 등을 집필한 작가 권정생(1937~2007)과 30년간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들의 편지내용을 토대로 제작된 연극 ‘오래된 편지’가 대학로에서 공연 중이다.

연극은 두 사람이 인연을 맺기 전의 상황을 번갈아 보여주며 시작한다. 1973년의 어느 날 ‘이오덕(김정석 분)’은 ‘권정생(최우성 분)’의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소식을 접한다. 이오덕은 그 길로 권정생을 찾아가고, 이후 이들은 30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변치 않는 우정을 쌓는다.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연극 ‘오래된 편지’ 공연 장면. ‘이오덕(김정석 분)’과 ‘권정생(최우성 분)’이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1.23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연극 ‘오래된 편지’ 공연 장면. ‘이오덕(김정석 분)’과 ‘권정생(최우성 분)’이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1.23

두 사람이 편지를 쓰는 순간부터 무대는 반으로 나뉘어 사용된다. 왼편은 이오덕의 공간, 오른편은 권정생의 공간으로 쓰인다. 편지의 내용은 대사로 처리됐고, 배우들은 나지막이 대사를 읊는다. 이들의 대사는 서로에게 전하는 말이자 관객에게 하는 말이다.

특히 아동 글쓰기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를 담은 내용을 읽을 때 극의 주제가 명확히 드러난다. 이오덕과 권정생은 암혹한 군사독재 시절 편지를 주고받았다. 당시는 일본풍의 문학이 유행이었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도 일본의 문체로 쓰인 문학을 읽게 했으며, 일본작가의 글이 좋은 글이라고 가르친다. 연극은 이런 상황을 꼬집는다.

작품은 초등학교 안에서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일본 작가의 시를 베껴 글쓰기를 한 어린이는 선생님들과 또래 친구들에게 박수를 받는다. 반면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지만 그 안에서 느낀 소소한 행복을 적은 학생의 글은 조롱받는다.

이오덕과 권정생은 이 사건을 보고 “어른의 시각으로 아이들의 글을 평가하면 안 된다”며 “정갈하지 않지만 우리 아이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대로 글을 쓰게끔 해야 한다. 어른들 눈에 일본 것이 좋다고 그것을 강요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장면을 통해 ‘그동안 어린이를 어른의 시선 아래 가두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를 준다.

연극은 화려한 조명과 웅장한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다. 극은 기본 조명과 배경소리·음악만을 사용해 담백하게 진행된다.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배우들이 읽어주는 두 사람의 편지 내용에 집중할 수 있다.

실제 초등학교 4학년·1학년인 아역 권미조·이진우의 등장은 무엇보다 눈에 띈다. 대학로 공연에 이 나이 또래의 아역배우가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간혹 아역이 등장한다 해도 짧은 대사 하나만 하고 들어가기 십상인데, 두 아역 배우는 무대 가운데서 시를 낭송하고 성인 배우들과 대사를 주고받으며 긴 분량을 소화한다.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연극 ‘오래된 편지’ 공연 장면.ⓒ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1.23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연극 ‘오래된 편지’ 공연 장면.ⓒ천지일보(뉴스천지) 2017.11.23

이구열 연출은 “두 분의 편지에 초점을 맞춰보니 모든 게 아이에게 귀결되더라”며 “진짜 아이가 등장해야 관객에게 두 분의 정서가 전달될 것 같았다”고 밝혔다.

김정석은 군부독재 시절 정권에 굴복하지 않고 올곧게 산 이오덕 선생의 모습을 무난하게 표현한다. 정부의 견제에도 무던하게 있다가 광주사태 소식을 듣고 오열하는 모습은 이오덕이 나라의 미래에 대해 얼마나 생각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최우성은 결핵으로 축 처지고 힘겨운 모습을 연기하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그 누구보다 생기 넘치는 표정을 지어 권정생 선생 생전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돌아보게 하는 연극 ‘오래된 편지’는 오는 12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드림시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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