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서양의 ‘연인의 날’이 밸런타인데이(Valentine’s Day, 2월 14일)라면 한국인에게는 ‘경칩’과 ‘칠석’이 있다.

3세기 로마 가톨릭교회 밸런타인 주교가 사랑하는 남녀의 혼배성사를 했다가 이교도의 박해로 순교한 2월 14일이 밸런타인데이 기원이다.

15세기 영국의 시골처녀 부르스가 도시청년 존 패스턴에게 연애편지를 보내서 2월 14일 결혼이 성사됐기 때문에 이때부터 밸런타인데이가 시작됐다는 설도 있다.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고백하는 풍습은 19세기경에 생겨났다.

여성이 초콜릿 선물로 사랑을 고백하는 일본식 밸런타인데이는 1980년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이어서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선물하며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화이트데이(White day, 3월 14일)가 생겨났다. 밸런타인데이에 여자로부터 받은 선물에 남자가 보답하는 날이다.

연인의 날을 의미하는 우리나라의 풍속은 경칩과 칠월칠석날이다. 기원은 밸런타인데이 못지않게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경칩(驚蟄)은 24절기 가운데 세 번째 절기로 3월 5일 전후다. 농기구를 정비하며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때이다. 경칩은 ‘일어나다’라는 ‘경(驚)’과 ‘겨울잠 자는 벌레’라는 뜻의 ‘칩(蟄)’이 어울린 말이다. 곧 겨울잠 자는 벌레나 동물이 깨어나 꿈틀거린다는 뜻이다.

옛날 청춘남녀들은 경칩을 몹시 기다렸다.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로써 은행 알을 선물로 주고받으며 사랑을 고백했고 은행을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에 있는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돌면서 사랑을 키웠다.

농업서적 ‘사시찬요(四時纂要)’에 “껍질이 세모난 것이 수 은행이고 둥근 모양이 암 은행이다. 경칩에 부부가 은행을 나누어 먹으면 금슬이 좋아진다”고 했다.

더구나 은행나무는 천년을 살기에 오랜 사랑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었다.

음력 7월 7일을 칠석(七夕)이라 한다. 

하늘나라 목동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 직녀가 결혼 후 게으름을 피우자 옥황상제는 크게 노하여 견우는 은하수 동쪽에, 직녀는 은하수 서쪽에 떨어져 살게 했다. 

이에 까마귀와 까치들은 해마다 칠석날에 이들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 오작교(烏鵲橋)를 놓았다.

견우와 직녀는 이날 다리를 건너 1년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고 다시 헤어진다는 설화가 전해져 온다. 

칠석날은 어린 학동들이 별을 보며 시를 짓거나 공부 잘하기를 빌었다.

칠석날 대표적인 풍속은 걸교(乞巧)다. 처녀들은 바느질감과 과일, 반원형의 달떡을 빚어 놓고 베 짜는 솜씨와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빌었다. 제사를 지낸 뒤 음식상 위에 거미줄이 쳐져 있으면 하늘에 있는 선녀가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었다. 

이때 재주가 늘기를 비는 걸교는 명분이고, 실제로는 마음 두고 있는 사람에게 시집가게 해달라는 사랑의 기도였음이 당시 가요에 나타난다. 

우리 선조들은 이같이 경칩 날에 은행 알을 나눠 먹으며 사랑을 고백했고, 칠석에는 달떡을 차려놓고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하늘에 빌었다. 

그래서 경칩과 칠석날을 연인의 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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