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일 서울특별시청소년수련시설협회 사무국장

혜진이 예슬이 사건, 조두순 사건, 김길태 사건, 며칠 전 김수철 사건…

언뜻 생각해도 기억나는 아동성범죄사건들이다. 그만큼 이 사건들이 우리 기억 속에 오래된 일들이 아니라는 얘기다. 잇단 아동약취, 성폭행, 살해… 범죄들이 계속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있고 여자 아이를 둔 부모들은 집단 히스테리에 빠지고 있는데, 사건이 일어날 때 마다 관계 당국은 온갖 대책을 내놓고 법률을 손본다고 부산을 떤다. 하지만 결국 어린 여자아이들은 또다시 성범죄자의 희생양이 되고 우리는 또 분노하기를 반복한다.

2008년도에 혜진이 예슬이 사건과 일산 초등학생 엘리베이터 폭행 사건이 일어나자 관계 당국은 온통 난리법석을 떨며 문구점·약국·슈퍼마켓 등에 아동안전지킴이집 스티커를 붙였다. 아동성범죄전담반을 설치하겠다고 해놓고선 성범죄우범자 관리대상에 허점을 보이며 김수철을 감시망에서 놓쳤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다시 한다고 말한다.

무방비 상태로 여자아이가 납치되고 있었지만 아동안전지킴이집은 둘째 치고 학교 운동장에서 김수철의 집까지 1km 남짓 동안 아무도 이 아이를 도와주지 못했다는 게 더 기가 찰 노릇이다. 언론에 떠들썩하던 학교폴리스나 배움터지킴이는 다 어디가고 아동보호는 평일에만, 휴일에는 아이들 스스로 알아서 조심하라는 것인지 상식의 선에서 제도의 무책임감이 느껴져 분통이 터진다.

2006년 아동성범죄자 신상공개, 성범죄특별전담반 설치, 2008년 성범죄자 공소시효 정지발표 후 취소, 아동안전지킴이집 설치, 아동성범죄전담반 설치, 이번에는 365일 24시간 학교안전망서비스, 장기복역 성범죄전과자 별도관리 등의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이런 식이라면 당국의 대책을 신뢰할 수 없다. 한참 인기를 과시하던 CCTV도 범죄 예방보다는 범죄 발생 후 범죄자를 확인하는 기능이 더 강한 것 같아 믿음이 가지 않는다.

우스갯소리로 이들을 화학적으로 강제 거세하면 손가락으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성범죄자들의 관리 기준이 범죄 후 몇 년이 지나고 안 지나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아동성범죄자들을 효과적으로 사회와 차단하고 범죄를 사전 저지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일만 터지면 부랴부랴 내놓는 대책 때문에 정부의 아동보호시스템이 반짝효과에 기대는 전시성에 가까워 기초부터 허약하기 때문이다.

성범죄자들은 주로 학교 주변에서 서성이거나 배회하는 아이들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학교 경계선으로부터 직선거리 50m 이내로 설정돼 있는 학교환경위생정화 구역상 절대정화구역 내 청소년 유해시설을 철저히 이전토록 하고 아동 납치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는 아이들의 배회요인 (미니게임기 설치, 불량식품 판매, 판촉 호객행위 등 유해환경)을 차단해 아동안전지대로 그 역할을 강화해야 하며 현행 50m 이내로 돼 있는 절대정화구역을 100m 이내로 확장해 아동보호절대구역으로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 다음에야 배움터지킴이건 24시간 감시 서비스건 소용이 있게 된다. CCTV도 중요하지만 학교 주변에 온갖 잡상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을 접하는 사이에 대상을 노리는 범죄자가 있다. 적어도 학교와 학교 주변에서는 아이들을 납치하거나 성폭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회적 합의와 인식이 성립되도록 당국이 먼저 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부터 시행해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내실 있는 제도로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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