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내가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나라에서 선비를 양성한 지 500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나라를 위해 죽어가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통탄스럽지 않으리오.” (p.484-매천 황현의 유서)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일생을 마친 뒤 후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또 있을까.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는 ‘의’를 위해 목숨과 사익을 초개같이 버린 자랑스러운 선현들이 참 많다.

1910년 간악한 일제의 군홧발 아래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넘어가자 울분을 이기지 못한 매천 황현(1855~1910)은 사람 된 도리, 선비 된 도리를 이루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한 번도 정치에 관여한 일도 없고, 녹을 받아 생활한 적도 없었다. 단지 글을 아는 지식인의 책무 때문에 그렇게 했다.

향산 이만도(1842~1910) 역시 국치(國恥)에 단식으로 목숨을 끊어 절의를 지켰다. 백성들의 동요를 의식한 왜경이 강제로 그에게 미음을 먹이려고 하자 향산은 “나는 당당한 조선의 정2품 관리다. 어떤 놈이 감히 나를 위협하는 것이냐”고 꾸짖으며 끝내 먹을 것을 입에 대지 않았다.

이 책은 이렇듯 유교철학을 몸소 실천하며 기꺼이 ‘바르고 옳음’을 택했던 의인 스물네 명의 삶을 담았다.

저자는 2007년부터 2년 동안 나라와 의를 위해 고난을 택한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다녔다. 유적 탐방을 통해 직접 선조들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인의(仁義)에 충만한 삶을 길어 올렸다. 깔끔한 사진과 진솔한 글이 잘 어우러지면서 자연스러운 영혼의 울림을 이끌어 낸다.
각 유적에 대한 묘사도 자세하게 돼 있어 저자의 글을 머릿속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유적지를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유적지를 순례하면서 400여 년 동안 잘 보존된 이항복 묘소의 빗돌을 보며 놀라는가 하면, 찾아가는 길에 푯말 하나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은 이건창의 묘소를 보고 비탄에 빠지기도 한다. 저자는 현장 사진 속 유적에 깃든 선조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매 순간 감동에 가득 찬 목소리를 전한다.

아울러 저자는 문화재를 반듯하게 보존하는 것이 후손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그들이 살다 간 땅, 그곳이 바로 역사의 땅이자 사상의 고향이었고, 그들이 남긴 숨결이 곧 민족의 혼이었다.”

박석무 지음 / 한길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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