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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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친구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주장을 펼치다보면 그 끝은 언제나 ‘상상은 자유니까… 네 마음대로 생각하든 말든…’이라는 모난 말이었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서 모난 말을 내뱉었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상상력이 고갈되고 있음을 느낄 때 침체되곤 한다.

왜 이전보다 더 나은 것들을 상상해내지 못하는 것인지, 이제는 더 이상 상상할 거리가 없어져 그런 것인지, 자책을 하며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보기도 한다.

상상은 내 마음이다. 텔레비전은 갖은 이야깃거리를 송출한다. 모든 프로그램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혹 생각지도 못한 상상력이 동원된 참신한 아이템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기재가 뛰어난 방송이 보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 타인의 상상력을 맛보고 즐기기 위해 방송을 시청했지만 즐기기는커녕 바보가 돼있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집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상상들이 모든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집에는 다리가 달려서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걸어갈 수 있고, 마음먹은 대로 굽혔다 펴며 놀이기구가 되어 가끔은 번지 점프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집은 전망대와도 같아서 이곳저곳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점찍어둔 곳이 있다면 금세 달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살아날 구멍이 있는 것처럼 상상력은 없었던 것 같아도 내면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다시 솟아나곤 하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집요하게 파고들다보면 이상한 상상력이 샘솟는 것이다. 집에 다리도 붙고 유압기도 달리고, 드론에 달린 프로펠러가 어디론가 날아갈 수 있는 장치도 있다.

집 뒤편의 로켓엔진은 필요하다면 우주까지도 날아갈 수 있게 된다. 어차피 상상 속에서는 모든 것이 내 뜻대로이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즐거운 일인데 많은 것들에 의해서 구속받고 있다.

집짓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조금 더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를 수용하는 것이 마치 TV를 보고 상상력을 얻고자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상상력을 담은 집을 짓기 위해 TV를 열심히 보는 것은 오히려 상상력이 줄어드는 일을 당연한 듯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과 가족들에게 필요한 요구들을 가장 충실히 반영할 수 있도록 원하는 삶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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