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쑹타오(宋濤)는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다. 그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최근 3박 4일 북한을 다녀왔다. 북핵 문제가 평화냐 전쟁이냐의 기로를 헤매는 마당이어서 그의 방북은 당연히 주목을 끌만했다. 중국의 관영 신화사 통신은 중국 정부가 이런 외부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는 점을 대변해 ‘그는 마술사가 아니다’라며 과한 기대에 미리 쐐기를 박았었다. 그들 스스로가 방문 성과에 대해 확신하고 있지 못함을 내비쳤던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북에 갈 때 세계의 이목을 끈 쑹타오는 돌아올 때는 너무나 조용했다. 돌아오는 쑹타오는 말이 없었다. 그를 보낸 북에서도 거의 침묵을 지켰다. 오히려 이래서 더 큰 뉴스거리를 만들었다. 꼭 시끄러워야 뉴스가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일국의 최고지도자가 특사를 파송할 때는 그에게 친서가 주어지며 그것을 전달할 상대방 나라의 최고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상례로 돼있다. 그런데 이처럼 북에 갔던 쑹타오 특사가 북에 갈 때와 너무 다르게 조용히 용두사미(龍頭蛇尾)로 귀국하는 상황이 되자 그를 겨냥하고 있던 호기심들이 폭발하고 말았다. 

두 말할 것 없이 그가 북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을 만나지 못 했다면 그는 북에 헛걸음한 것이 된다. 이렇게 헛걸음을 했기에 쑹타오는 조용히 귀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만발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북의 숨통을 조이는 국제적인 대북 봉쇄 조치에 중국이 어쩔 수 없이 동조는 하고 있지만 그런 중국일망정 아주 등 돌리고는 살아가기 어려운 것이 북이다. 이런 마당에 그들이 매달려야 할 중국의 특사를 만나주지 않은 것이 엄연한 사실이라면 겁도 없이 그런 일을 저지른 김정은의 뱃심이 더더욱 큰 궁금증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신화사 통신은 ‘쑹타오 특사는 방문 기간 북한 노동당 중앙지도자와 회담을 진행했으며 양국 양당 관계와 한반도 문제 등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보도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김정은을 면담했다는 소식은 없다. 

신화사 통신이 언급한 북한 노동당 중앙 지도자는 쑹타오가 만난 최룡해 북한 정치국 상무위원 겸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 외교담당 부위원장 등을 말한다. 그나마 그 한 줄의 문장이 북중 양국을 통틀어 그의 빈손 귀국과 관련해 쓰인 가장 길고 친절한 기사의 전부였다. 만약 특사가 홀대를 받고 헛걸음을 쳤다면 양측이든 또는 어느 쪽에서든 분명히 부정적인 뒷소리가 나오는 것이 예사일 텐데도 이렇든 저렇든 혈맹의 한 집안이어서 그런지 이들의 입에서는 아무 소리가 없었다. 언제든 뒷말이 나오고야 말겠지만 적어도 아직은 그러하다. 정말 아리송하다. 사실 이렇게 매사에 아리송한 것이 그들 통제 사회의 생리인 것을 외부 세계는 잘 안다. 그렇기에 쑹타오 특사가 김정은을 못 만난 심증이 넘쳐남에도 그 진실 여부에 대한 외부 세계의 궁금증은 쉽게 가라앉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연한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볼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쑹타오 특사가 귀국하는 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북을 테러지원국으로 9년 만에 재지정, 북의 고립을 가속화시킬 것이 틀림없는 ‘불량국가’의 낙인을 다시 찍었다. 필시 정보력을 동원한 미국이 사태의 전말을 알아낸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비핵화를 설득하러간 쑹타오 특사를 김정은이 의도적으로 따돌리면서 ‘핵 포기 불가’의 메시지를 확실히 던진 것으로 미국은 누구보다 먼저 파악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북의 도발이 잠시 소강국면을 유지하면서 미국이 그런 북과 물밑 대화를 진행하고 있음을 굳이 숨기지 않던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런 흐름에서 그런 조치가 그렇게 갑자기 나오기 어렵다. 

그렇다면 까마귀는 우연히 푸드득 난 것이 아니다. 북의 의중을 명백히 안 뒤에 목적의식을 가지고 난 것이며 배 역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라 부러 한 날개 짓으로 떨어뜨린 것이 된다. 이렇게 돼서야 쑹타오 특사의 ‘김정은 면담 불발’은 팩트(fact)로 굳어지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거기에 방증(傍證)으로 등장한 것이 쑹타오가 귀국하는 날 김정은이 평안남도의 자동차 공장을 시찰했다는 북한 매체의 보도다. 이는 쑹타오가 ‘만남’을 애타게 기다리던 마지막 날 김정은이 그를 외면하고 평양을 떠나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래서 미북 간 거칠던 비난전도 잦아들고 중국이 움직이면서 혹여 해결의 가닥이 잡혀가나 했던 북핵 문제는 다시 시지퍼스(Sysyphus)의 헛공사처럼 도로(徒勞)가 되고 말았다. 바위를 산 위로 굴려 올려봤자 항상 제자리로 미끄러져 내리는 시지퍼스의 헛공사, 북핵 문제가 바로 지난 25년 동안 이 같은 시지퍼스 헛공사였다. 북은 속이고 이렇게 세계는 속았다.     

한반도 주변 해역에는 현재 3척의 미군 항모가 가공할 전력의 강습전단을 거느리고 훈련을 진행 중이다. 일본 야마구치 현 이와쿠니 주일 미군 해병대 기지에는 최근 미 본토에서 날아온 최신예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B 3대가 추가돼 모두 16대의 완벽하고 막강한 F35B비행대대를 구성했다. 이것이 유사시 대북 타격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물론 대북 타격 임무에 동원될 수 있는 전력은 이 정도가 다가 아니다. 얼마든지 더 있다.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관련국들이 모두 평화적인 해결을 지향하지만 그렇다 해서 미국에 의한 군사력 사용(military option)이 아주 배제돼 있지도 않다. 미군 전력이 종이호랑이가 아니라면 한반도 주변에 대규모 전력이 동원된 지금과 같은 상황을 북도 근심할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럼에도 북은 쑹타오가 다녀가고 동시에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것을 기화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막말 공격을 다시 쏟아내기 시작했다. 감히 중국의 특사를 홀대해 보낸 이후의 북중 관계는 그들 집안일로서 알아 처리할 일이로되 미국과 새롭게 업(業)을 쌓는 일은 사태를 지극히 위기 국면으로 몰고 가는 행위다. 북이 이걸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길을 막가기로, 핵을 절대 포기 않기로 작정했음이 분명하다. 어쩔 셈인가. 뒷감당을 그들이 해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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