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국회의원회관 2층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유통산업규제가 소비자 후생과 도시재생에 미치는 영향’ 세미나에서 주제발제가 끝난 후 토론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전문가들 現유통산업법 실효성 문제제기
“전통시장 성장보다는 산업만 후퇴돼”
“규제 끝내고 소매점포 매력 높여야”

[천지일보=이승연 기자] “대기업과 중소상인의 갑을관계 관점에서 벗어난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의 ‘유통산업규제정책’을 소비자 후생이라는 측면에서 재설계해야 한다는데 전문가들과 소비자가 입을 모았다.

22일 국회의원회관 2층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유통산업규제가 소비자 후생과 도시재생에 미치는 영향’ 세미나에 참석한 토론자와 발제자들 대부분이 이같이 주장했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날 ‘유통산업발전법이 유통산업과 도시재생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면서 “대형 유통업이 생기면 무조건 망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주변 상권으로 고객들을 끌어모으는 ‘공간적 응집효과’가 발생해 그 지역 전체의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의 활성화와 아울렛 입점으로 인구와 주변 소규모점포들이 활성화된 파주시를 사례로 제시했다.

안 교수는 “대규모 점포라고 하면 도시에 어떤 영향을 줄지 보지 않고 무조건 규제하겠다는 게 문제”라며 “대도시, 소도시 등 지역별로 정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형점포가 지역에 들어섰을 때 소매업종이 사는 방법으로는 규제가 아닌 ‘보완업종’을 택하고 정부는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지원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현재의 법은 전통시장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시작됐지만 전통시장 매출은 2015년 21조 1000억원으로 규제 전인 21조원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선진국과 달리 우리 정부가 유통산업의 규제를 강화하는 사이 대규모 고용까지 유발하는 우리나라 유통산업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2016년 매출액 기준 한국 유통소매기업 상위 200개사의 전체 매출은 128조 4000억원으로 미국 코스트코 1개사의 매출액인 137조 8000억원에도 못 미친다. 또한 미국 1위 월마트의 매출액은 한국 대형마트 1위 롯데쇼핑의 19.1배 앞서 있다. 최 교수는 “대형유통기업은 갑이고 골목유통은 을이라는 근시안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나 소비자 편익과 유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고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병태(컨슈머워치 공동대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역시 “갑을관계의 관점에서만 논의가 이뤄지는 게 안타깝다”며 “모든 산업은 트래픽을 어떻게 유발하느냐가 관건인데 유통은 많은 트래픽 유발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모든 산업의 혁신을 주도하는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규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호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36년 전에도 전통시장 문제를 지적하며 현대화를 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지금까지도 전통시장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소비자나 정치인들도 말로는 전통시장 편을 들지만, 발로는 대형마트를 찾고 있다. 이제는 위선을 버리고 자유시장의 기본 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형마트로 인해 반사 불이익을 본 사람이 있다면 그 분야를 격려하고 잘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지 (대형마트를) 규제해서는 안 된다”며 “유통산업 규제현황이 제조업 수준으로 좋아졌다면 국민소득 4만 달러까지도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전문가들의 주장에 대해 서기웅 산업통상자원부 유통물류과장은 “규제를 통해 사실 중소유통이나 전통시장이 살 것이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다”며 “다만 최소한의 규제를 통해 유통 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대형유통점 외에 다른 형태도 생존하기 위한 목표로 규제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 발의돼 있는 28개의 유통법 중 정부가 수용 가능한 것과 없는 것을 나눠 다시 하나의 개정안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며 “유통산업 발전을 저해하지 않고 소비자 침해를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법안을 마련했고 이런 차원으로 규제하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후생 관점에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의무휴업일의 불편함을 참을만하다는 의견도 많았다”며 “우려했던 것보다 유통산업 규제가 소비자후생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진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 22일 국회의원회관 2층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유통산업규제가 소비자 후생과 도시재생에 미치는 영향’ 세미나에서 주하연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유통산업발전법이 소비자 후생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앞서 주하연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대형마트 규제 이전과 규제 이후 소매업태별 매출을 분석해 ‘유통산업발전법이 소비자 후생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주 교수에 따르면 시장 상황을 모두 반영한 결과 규제초반에는 전통시장의 매출이 증가했지만 중장기에는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효과는 미미했다. 중장기 시점에서 보면 대형마트에서 구매는 2만 2000원 감소, SSM에서 구매는 4000원 감소했다. 전통시장의 경우에는 기존에 이용했던 구매자들만 봤을 때는 매출액이 3만 8000원 증가했지만 이용하지 않았던 고객까지 합치면 매출은 줄었다.

주 교수는 “단순 영업규제는 단기적으로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만 고객들을 전통시장으로 유인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규제정책에서 빠진 건 소매업체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청년시장, 야시장 등 전통시장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등 새로운 고객을 유입할 수 있는 정책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유통산업규제가 소비자 후생과 도시재생에 미치는 영향’ 세미나는 자유한국당 김종석 의원과 컨슈머워치가 공동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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