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16일 주요 교단장들과 한교연이 통합을 선언하며 창립총회 행사를 갖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DB

종교개혁 정신 구현한다더니
유령단체로 전락한 ‘한기연’
‘통합’ 앞장선 교단장들은 잠잠
존재감 과시하는 한기총·한교연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빛낸다며 한국 개신교가 추진했던 통합이 사실상 중단되며 분열을 거듭해온 한국교회의 한계를 드러냈다.

주요 교단장들이 앞서서 통합에 나섰지만, 체질이 다른 교단연합기구들은 결국 하나 되지 못했다. 교단장들과 손을 잡았던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통합행보에 선을 긋고 최근 자체 조직 정비에 나섰다.

올초 대표회장 직무정지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고 우왕좌왕했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도 새 대표회장 취임 후 대외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마틴 루터의 연합 정신을 구현하겠다는 한국교회 보수진영의 외침은 허공에서 사라졌다.

보수진영 통합에서 더 나아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등 진보진영과도 통합을 추진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는 시도조차 되지 못했다.

한국교회 통합논의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지난해부터 급격하게 이뤄지기 시작했다.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다. 당시 한기총 대표회장이었던 그는 주요 교단장들과 손잡고 통합을 공론화했다. 그러나 한교연은 한기총과의 분열 계기가 됐던 이단 논란 회원 교단에 대한 선 조치를 강하게 요구했다. 한기총과 교단장들의 압박에도 입장에 변화는 없었다. 여론은 한교연을 향해 ‘통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난으로 흘러갔다.

▲ 한기연이 추후 통합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힌 대상인 한기총은 트럼프 환영 대규모 집회를 갖는 등 독자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DB

올해 1월, 기류가 바뀌었다. 이영훈 목사가 임기를 문제 삼아 제기된 사회법 소송에서 패소해 한기총 대표회장 직무정지를 당했기 때문이다. 한기총은 새로운 수장 쟁탈전에 혼돈을 거듭했고, 통합 논의는 수면 속으로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구심점을 잃은 교단장들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협의체 형태로 운영하던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를 정식 단체로 창립했다. 그러나 한교총은 제4의 신설 단체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거센 비판에 이렇다 할 공식적인 활동을 하지 못한 채 움츠러들었다.

다시 통합 논의가 재개된 때는 8월이다. 한기총의 새 수장을 뽑는 임시총회를 앞두고 한교총과 한교연이 손을 잡았다. 8월 16일 한교총과 한교연은 돌연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을 탄생시켰다. 이날 현수막에는 ‘창립총회’라는 타이틀이 붙었고, 대대적인 홍보가 이뤄졌다.

문제는 이후 통합기관으로서의 행보가 전무했다는 점이다. 한교연은 대외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한기연이 각 교단의 인준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9월 정기총회 이후 정식으로 통합이 결정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달 17일 한교연은 정관문제와 세부통합 절차 협의 요청이 묵살됐다며 통합 결렬을 선언했다. 거창하게 창립을 알린 한기연은 결국 유령단체가 된 셈이다.

한기총은 엄기호 목사를 새 대표회장으로 선출한 후 한기연을 인정하지 않고 통합의 대상은 오직 한교연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한기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에 맞춰 광화문 인근에서 초대형 환영 집회를 진행하고, 주요 대외 행사에 대표회장이 참석하는 등 존재감도 과시하고 있다. 이후 통합 논의가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상황에서 주요 교단장을 중심으로 올해 추진된 교단연합기구의 통합은 ‘무리수’였다는 게 중론이다. ‘선 선언, 후 논의’식으로 진행된 통합은 체질이 다른 연합기구를 통합하기 위한 방책으로는 부적격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한편 한기총 한교연 NCCK 등 교단연합기구들은 올 연말에서 내년 초까지 각각 정기총회 등을 갖고 조직재정비에 돌입할 예정이다.

▲ 이달 17일 한교연이 임원회를 갖고 통합 결렬을 선언하고 있다. (출처: 한국교회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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