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 뉴시스)

재무부 내일 추가제재 발표
‘불량국가’ 낙인 상징성 더 커
김정남·웜비어 사건 등 근거
“환영” 목소리… 北 반응 주목

[천지일보=이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다고 발표한 배경에는 대북 압박을 최고 수위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다시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9월 이후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60일 넘게 중단하고 있으나 북핵·미사일 문제와 관련 특별한 변화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강력한 추가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조치와 동시에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외교해법의 유효함을 강조하며 대화 테이블로 나올 것을 주문해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北, 9년 만에 또… ‘김정남·웜비어’ 사건 결정적

북한은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직후인 1988년 1월 이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다가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고 핵 검증에 합의한 뒤 2008년 10월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됐다. 따라서 9년 만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된 셈이다.

미 국무부는 매년 4월 30일까지 국가별 테러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한다. 이 보고서에서 3개 법의 규정에 따라 반복적으로 테러행위를 지원한 나라가 있는지 결정한다.

이번 조치의 근거는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발생한 김정남 암살 사건과 지난 6월 17개월 간 북한에 억류돼 있다 미국으로 풀려났던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며칠 만에 사망한 사건 등에 따른 것이다.

이에 ‘국제 테러행위를 반복적으로 지원했다’는 지정 기준에 북한이 부합하냐는 지적이 나왔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외국 영토에서 암살을 포함해 국제 테러 행위를 반복적으로 지원했다”고 선을 그었다. 국무부는 다른 북한 관련 살인 사건들에 대해선 ‘기밀’이라고 밝혔다. 틸러슨 장관은 “다양한 출처의 정보와 첩보를 철저히 검토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대북 특사인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빈손’으로 귀국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극약 처방을 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테러지원국으로 결정된 나라는 미국의 지원에 대한 규제와 방산제품의 수출 및 판매 금지, 이중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제품들의 수출 통제, 다양한 재정 및 기타 규제 등 4가지 제재가 부과된다.

북한은 이미 국제사회로부터 고강도의 제재를 받고 있어 규제에 따른 실효성은 별반 없으나 ‘불량국가’라는 낙인의 효과는 크다.

다만 틸러슨 장관은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여전히 외교를 희망한다”며 대화를 통한 북핵 위기의 해결을 강조했다. 또 다음날 재무부가 발표할 추가제재에 대해서도 “매우 상징적 조치며 실질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김정은 정권이 걸어 나와 대화할 준비가 될 때까지 상황이 악화할 것이라는 점을 알게 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전문가 “강력 조치”… 北 도발 우려도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미국 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미국이 북한에 대해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결정한 것은 북핵 해결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면서도 한동안 대화 가능성을 탐색해왔던 양국 관계를 다시 냉각시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날 CNN, 연합뉴스, 뉴시스 등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당시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낸 대니얼 러셀은 인터뷰에서 “상징성 있는 강력한 조치”라고 평가하면서 “오바마 정부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문제를 검토했으나 법적인 근거를 찾지 못했다. 김정남 암살 사건이 트럼프 정부에 합법적인 근거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북한과의 대화와 평화협상에 대해 “트로피들 중 하나를 유리 케이스에서 꺼내 깨부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에드 로이스(공화) 하원 외교위원장은 성명을 내고 “김정은은 이복형 김정남을 뻔뻔스럽게 화학 무기로 살해하고 오토 웜비어를 잔인하게 고문해 비극적인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두 사건은 북한의 지속적인 테러 패턴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환영의 뜻을 전했다.

북한에 추가 무력도발 명분을 줄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조치가 “핵 협상을 압박하는 강력한 새 지렛대가 될지, 아니면 트럼프와 김정은 간의 ‘말의 전쟁’을 심화할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국 관리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미사일 발사 또는 핵실험 재개 등을 포함해 여러 방법으로 반응할 수 있다”며 “매우 불안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중국이 대북 압력을 강화하도록 상기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 정책 담당 보좌관이었던 데니스 와일더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조치는 (대북 압력 강화가) 테이블 위에서 치워지지 않을 것이며, 양국(미국과 중국)이 합의한 정책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신호를 중국에 또다시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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