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일 서울특별시청소년수련시설협회 사무국장

공명선거, 투표참여로 대표돼 오던 우리 선거운동에 2000년대 중반부터 ‘매니페스토(Manifesto)’라는 참신한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매니페스토는 자신이 내건 공약을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하게 수립해 국민에게 ‘약속’하라는 의미이자 표를 위해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 ‘약속’의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도자의 ‘약속’에 대한 본보기는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선생의 유명한 일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932년 4월 29일 오전 11시, 상해임시정부 김구 국무령의 지시로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구 공원에서 천장식(天長節)에 폭탄을 투척한 사건이 일어나자 동지들이 민족 지도자인 안창호 선생의 피신을 요청했으나, 선생은 한국인소년동맹의 5월 어린이 행사에 내기로 한 기부금 2원의 전달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소년동맹 위원장 이만영 군의 집을 오후 4시경 방문하다 프랑스 경찰에게 체포, 일경에게 넘겨진다. 충분히 도피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도산 선생은 왜 한 소년과의 약속을 그리 중요시했던 걸까?

안창호 선생은 지도자는 물론이거니와 일반 국민들의 약속 준수가 국가의 신뢰와 사회의 신용을 향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가르쳤다. 1908년 평양에 설립한 인재양성 특수훈련기관 대성학교에서 생도들에게 ‘약속’을 준수를 통한 건전 인격수련을 강조한 것도 안창호 선생의 이 ‘약속’에 대한 확실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도 말고 약속을 지키지 않기 위해 거짓을 행하는 것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주범이라며 이를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라고까지 한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은 약속과 거짓말에 대해 정치인들이 어떤 태도와 의식을 가져야 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6.2지방선거가 모두 끝난 지금, 우리는 어떤 약속을 들고 자신을 찍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인 후보가 당선됐는지 되돌아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왜 유권자들이 국민에게 한 약속을 접고 세종시 사업을 수정하겠다고 한 여당의 또 다른 약속을 믿지 못하겠다고 한 건지도 곰곰이 분석해 보아야 한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한 소년과의 약속을 지키려 애쓴 안창호 선생의 정신을 닮아 약속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이 국민의 위가 아니라 섬겨야 할 아래에 있다는 자세를 가진 그런 훌륭한 지도자를 정말로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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