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용전2리 마을에서 지진으로 인해 집이 무너진 것을 보고 심상록(45)씨가 한숨을 쉬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보금자린 없어지고 아이들 등교불가”
아수라장에서 공부해야 하는 수험생
생계 위해 대피소에서 출근하는 주민

전문가 “여진, 1달~6개월 걸릴 수도”
한파 속 임대주택도 순위에 따라 배정
피해만 파악하고 사후대책은 ‘오리무중’

[천지일보 포항=김정필 기자] “결혼한 지 18년이 됐고, 남편은 이곳에서 태어나서 45년 동안 살았던 보금자리인데…. 하루아침에 살 곳이 없게 돼 어떻게 해야 될 줄을 모르겠습니다.”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한 지 나흘째인 18일 이재민을 수용하고 있는 경북 포항시 흥해실내체육관이 아닌 친척 집을 전전하고 있는 이재민의 하소연이다.

지진 이후 첫 주말을 맞은 이날 흥해신내체육관에서 10분 정도 달려 도착한 용전 2리에서 최선애(45, 여, 포항시 흥해읍 용전2리)·심상록(45)씨 부부를 만났다. 부부는 하루아침에 지진으로 인해 집이 무너져 당장 추위를 벗어나기 위해 친척 집을 다니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살던 이들 부부는 이번 지진으로 인해 보금자리를 잃은 상실감에 인터뷰 내내 울먹였다.

▲ 18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용전2리 마을에 있는 심상록(45)씨 집 앞 대문 위 기둥이 지진으로 인해 무너져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최씨는 당시 지진에 대해 “몸이 아파서 집에 있었는데 갑자기 ‘우르르~ 쾅’하면서 막 흔들렸다”며 “다행히 80대이신 어머니, 아버지는 집 앞 밭에서 무를 캐고 있었다. 대피하지 못 했다면 어떻게 할 뻔 했나”라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그동안 살았던 곳이 이렇게 처참히 무너진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 다른 사람은 지진 후 돌아갈 집이 있는데 우리는 없다”며 “당장 쌍둥이 자녀 2명은 학교를 가야 하는데, 학교 또한 지진의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서 보내기가 무섭다”고 호소했다.

읍사무소에 다녀와서 기둥이 무너진 집을 정리하던 심씨는 “내가 살던 집이기 때문에 내가 들어가서 집을 정리해야 한다”며 “읍사무소에서는 피해 처리만 받지 앞으로 대책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정부는 임시주택을 제공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대성아파트 주민이 우선권으로 하고 다음으로 피해 규모가 심한 가구에 기회가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 18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흥해중학교 본관 건물 외벽이 지진으로 인해 파손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18일 경부 포항시 흥해읍 흥해중학교 본관 건물의 외벽 벽돌이 지진으로 인해 땅에 떨어져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흥해실내체육관에서 200여m 떨어진 흥해중학교도 이번 지진을 피하진 못했다. 건물 외벽 벽돌이 떨어지고 체육관은 천정을 받쳐주던 X자 철골이 바닥에 떨어졌으며 교실 21곳 중 15곳 이상이 피해를 봤다.

흥해중 체육교사 심상문(58, 남)씨는 “학생들이 체육관에 수업하던 중 (철골이) 떨어졌으면 어쩔 뻔 했을까”라며 “20일 정상등교는 하되 학교 수업을 일찍 끝낼 계획이고 향후 조기 방학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지진 발생 당일인 지난 15일 일어난 여진이 33회에서 다음 날 16회로 점차 감소하긴 했지만 지진이 끝난 것으로 방심해선 안 된다. 지진 전문가에 따르면, 여진은 최소 한 달에서 길게는 6개월 이상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임대주택도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전날 흥해실내체육관을 방문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토부 임대주택) 500여 세대가 있는데 160세대는 금방 들어갈 수 있고 나머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말했다.

또 이강덕 포항시장은 “이재민이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인지 점검하고, 세대별로 거주 지역을 확인해야 하므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해 사후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진 발생 첫 주말… 밤 새는 불안한 대피소

포항에서 규모가 가장 큰 대피소인 흥해실내체육관에서는 800여명의 이재민이 밤을 지새웠다. 곳곳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핸드폰 보며 시간을 보내거나 이웃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며 애써 불안감을 없애려는 모습이었다.

첫 주말을 맞은 새벽 4시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자 이웃주민과 이야기를 하던 이매자(74, 포항시 흥해읍 옥성1동) 할머니는 “지진 발생 후 3일 밤 뜬 눈이다. 머리가 아프고 음식 맛도 모르고 누우면 몸이 흔들려서 잠을 잘 수 없다”며 “빨리 날이 밝아서 의사가 오면 진단을 받고 싶다. 자꾸만 심장이 떨린다”고 걱정했다.

▲ 18일 새벽 경북 포항시 흥해실내체육관에서 한 이재민이 생계를 위해 출근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수능을 5일 앞둔 한 수험생은 마땅한 장소가 없어 한 쪽에서 힘겹게 공부하고 있었다. 포항 영신고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김모(40대, 여, 포항 북구)씨는 “대피소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제대로 공부를 못 하고 있다”며 “여긴 도저히 공부할 분위기가 안 된다. 하지만 또 어디 마땅히 갈 곳도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긴긴 밤이 지나고 해 뜰 무렵 이재민 중에는 출근하는 이도 볼 수 있었다.

지진 피해를 위해 여러 곳에서 꾸준히 자원봉사 활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체육관 내부에서는 경상북도의사회·포항시의사회가 간이 의료상황실을 만들어 이재민의 건강상태를 점검했다.

체육관 밖에서는 포항시건강가정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지진 트라우마 심리 상담 지원’을 통해 이재민의 불안한 마음을 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등 활동이 이어졌다.

정오가 지날 무렵 대피소로 들어오는 정문에는 박스를 탑처럼 쌓고, 파티션을 화장실 앞쪽에 설치하는 등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바람으로 춥다”는 이재민의 요청에 따라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탰다.

김모(81) 할머니는 “문 앞에 앉아 있으니 바람이 너무 추워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며 “하지만 이제 파티션으로 막아줘서 너무 고맙다. 이제 한시름 놓을 수 있겠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6시 기준으로 포항 지진으로 인한 부상자는 80명, 민간시설 피해는 76건이 추가돼 1320여건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 18일 흥해실내체육관 대피소 앞에서 포항시건강가정지원세터에서 나온 상담원이 피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지진 트라우마 심리 상담’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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