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서른즈음에’에서 젊은 ‘현식(산들 분)’과 ‘옥희(케이 분)’가 함께 앉아있다. (제공: 파랑나무)

김광석 없고 강승원·조순창·산들 있다
‘서른즈음에’ 원작자 강승원 노래 19곡 불려
부족한 홍보·어색한 내용 아쉬움 남지만
배우들의 열연, 실망감 달래기 충분해

[천지일보=이혜림·지승연 기자] 1994년 6월 25일 서른의 반을 지나던 고(故) 김광석이 포크 장르의 노래 ‘서른즈음에’를 들고나와 국민적인 히트를 쳤다. 뮤지컬 ‘서른즈음에’는 이 불후의 명곡 원작자 강승원이 만든 노래로만 구성된 창작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유행했던 대중음악을 극적으로 재구성해 부르는 공연을 뜻한다. 가장 성공한 주크박스 뮤지컬은 스웨덴 출신의 혼성 그룹인 아바(ABBA)의 음악들로 꾸며진 ‘맘마미아!(1999)’다. 이 작품은 웨스트엔드(영국)와 브로드웨이(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6000만 명 이상을 동원했으며, 상업영화로도 제작돼 히트를 쳤다.

이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도 ‘진짜진짜 좋아해’ ‘젊음의 행진’ 등 수 많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발표됐고, 지금까지 다양한 가수·작곡가의 음악으로 만든 뮤지컬이 나오고 있다.

뮤지컬 ‘서른즈음에’는 오직 승진하겠다는 목적으로 상사의 온갖 비위를 맞추며 힘든 일상을 견디는 49세 만년 차장 ‘현식’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현식은 올해 차장 딱지를 뗄 줄 알았지만 승진심사에서 탈락하고 오히려 화장실 앞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아내에게 이혼 통보를 받은 현식은 술에 취해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 중년 ‘현식(조순창 분)’이 교통사고로 죽은 뒤 디지털월드에서 저승사자들과 이야기하는 모습. (제공: 파랑나무)

저승세계인 디지털월드에서 깨어난 현식은 저승사자의 착오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에 대한 보상을 받아 가장 즐거웠던 시절로 돌아가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는다. 1997년 대학을 다니던 시절로 돌아간 현식은 고백 한번 못하고 떠나보낸 첫사랑에게 고백하고, 엄마의 반대로 포기했던 음악을 다시 시작한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고단한 삶을 살았던 현식은 돌아간 과거에서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올해 초연인 뮤지컬 ‘서른즈음에’는 노래 잘 하기로 소문난 아이돌 산들(B1A4)과 케이(러블리즈)를 캐스팅해 젊은 층을 공략했다. 이들의 노래를 중극장에서 들을 수 있다는 점은 2030세대의 발걸음을 극장으로 옮기게 했다.

하지만 ‘서른즈음에’라는 제목 탓에 관객들은 고 김광석과 관련 뮤지컬로 오해하기도 했다. 실제로 기자가 공연을 본 당일 관객 중 몇명은 “김광석 음악으로 구성된 주크박스 뮤지컬이거나 김광석의 일생을 그린 뮤지컬로 생각하고 공연장을 찾았으나 정작 김광석 노래는 ‘서른즈음에’ 한곡만 나와서 실망했다”고 말했다. 뮤지컬의 장르와 내용이 더 분명하게 홍보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른즈음에’는 각박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 익숙해져 잊고 있던 행복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단순한 구조의 무대는 빔프로젝터 영상에 따라 벚꽃이 흩날리는 교정, 잎이 떨어지는 공원 등 다양한 장소로 연출된다.

갑자기 찾아온 불행, 계속되는 우연 등 내용은 다소 뻔하다. 또 과거 현식의 나이를 29살의 복학생으로 설정하는 무리수를 뒀다. 1997년 당시 군복무기간은 육군 26개월, 해군 28개월, 공군 30개월이다. 20살 대학 신입생이 돼 3학년을 마치고, 복무기간이 제일 긴 공군에 다녀왔다고 해도 복학할 나이는 25~26세가량이다.

현식만을 바라보는 수동적인 여자 옥희도 공감을 이끌기 어렵다. 옥희는 짝사랑하는 현식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고, 무시를 당해도 계속 옆을 지킨다. 이 같은 옥희의 행동은 순애보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다.

▲ 중년 ‘현식(이정열 분)’과 앙상블이 넘버 ‘달려가야해’를 부르고 있다. (제공: 파랑나무)

뮤지컬의 부족한 여백은 배우의 열연으로 메운다. 이날 무대에는 ‘중년 현식’ 역에 배우 조순창, ‘젊은 현식’ 역에 산들, ‘옥희’ 역에 유주혜 등이 올랐다.

조순창은 굵직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넘버를 불러 관객의 귀를 탁 뜨이게 만든다. 산들도 중년 현식에 뒤지지 않는 가창력으로 극을 이끈다. 특히 날카로운 목소리로 ‘서른즈음에’를 부를 때는 젊은 현식의 결연한 선택이 잘 표현된다. 유주혜는 안정적인 목소리와 또박또박한 발음을 구사해 당찬 옥희 캐릭터와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강승원의 노래는 총 19곡이 나온다. 이중 ‘21세기가 되면’ ‘어쩌면, 기적’ 두곡은 이번 뮤지컬을 위해 새로 만들었다. 만년 차장 현식의 인생을 출근길에 빗댄 안무와 함께 선보이는 ‘달려가야해’와 과거로 돌아간 현식이 노래로 성공하겠다며 부르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극의 내용과 무난하게 어우러진다.

‘추억소환’을 내세운 주크박스 뮤지컬 ‘서른즈음에’는 오는 12월 2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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