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그는 절정의 영광을 누리고 은퇴했으되 여전히 피겨 스케이팅의 아이콘(icon)이다. 김연아는 피겨 여왕이다. 그는 현역 때처럼 맹활약 중이다. 빙판 위에서가 아니다. 김연아의 세계적인 명성과 인지도는 그의 보폭을 급기야 유엔 외교 무대로까지 넓혀 놓게 했다.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 현지시간으로 11월 13일, 제72차 유엔총회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한 ‘올림픽휴전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자리에서 김연아는 우리 정부 대표단의 요청에 의해 평창동계올림픽의 홍보대사이자 특별연사로서 연단에 오르게 됐다. 흰 블라우스를 받쳐 입은 진녹색 정장 차림의 눈부시게 고운 김연아가 연단에 오르자 각국 대표들은 뜨거운 박수로 환호했다. 그 박수는 장내를 한참이나 뒤흔들었다.

김연아는 상기된 얼굴로 “인종 지역 언어 종교의 벽을 뛰어넘는 스포츠에 대해 말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평창올림픽은 평화를 나누며 아름답고 보편적인 언어인 스포츠를 통해 세계를 하나로 묶어낼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김연아는 계속하기를 “평창올림픽은 한반도 긴장완화에 이바지하고 남북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며 동시에 세계와 인류를 위한 올림픽의 평화정신을 나눌 수 있는 최고의 플랫폼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역설해 마지않았다. 사실 이 대목이 바로 김연아가 강조하고자 했던 그의 연설의 백미(白眉)였던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이는 평창올림픽 참가를 앞둔 세계 여러 나라들 중에, 북의 핵 및 미사일 개발과 실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최종 해결책으로서 군사옵션(military option) 등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상황에서 야기되는 한반도의 긴장상태에 대해 불안해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은 때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불안을 이렇게라도 달래주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유럽의 일부 국가들에서는 평창올림픽 불참을 입에 담는 나라들도 있었다. 이 같은 실정에서 유엔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올림픽휴전결의안’은 이들을 다소라도 안심시키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은 물론 북의 도발이 유발하는 평창올림픽의 ‘북한 리스크(risk)’를 관리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피겨 스케이팅의 세계적인 스타 김연아의 유엔 연설은 평창올림픽을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세계평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우리의 의지와 호소에 설득력을 한껏 더 보태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우리가 가동하는 민관(民官)총력외교를 웅변해주었다. 김연아는 그 나름의 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평창올림픽은 한반도의 평화를 가늠하게 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국제 스포츠 제전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러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평창올림픽휴전결의안’은 평창올림픽 개막 7일 전부터 패럴림픽(Paralympics) 폐막 7일 후까지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평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올림픽을 치를 수 있게 하자는 것이 그 취지이며 그 내용이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이상적이긴 하지만 평창올림픽이 계기가 된 한반도의 영원한 평화와 긴장완화 그리고 세계평화다. 그렇다면 이를 어찌 우리만의 소망이라 하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평창올림픽의 평화적인 개최와 진행, 마무리를 위해 총동원되어 유엔을 포함, 백방으로 뛰는 사이 북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인 JSA에서 귀순 북한 병사를 향해 거침없이 총질을 해대었다. 그 병사는 자유를 찾아 남쪽을 향해 달리던 중 그들이 갈겨댄 40여발의 총탄 중 총 5발이 전신에 피탄(被彈)돼 중상을 면하지 못했다. 가슴 아픈 것은 이곳이 유엔군사령부의 교전규칙이 적용되는 곳이어서 그가 군사분계선(MDL)을 넘긴 했지만 총격에 쓰러졌는데도 한국군의 경비구역에서처럼 즉시 대응을 못했다는 점이다. 규정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총격 원점을 겨냥한 대응사격은 아니더라도 우리 쪽에서 공포탄이라도 실컷 쏘아 대어 북에 경고하고 그 병사의 귀순을 엄호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구나 그들이 쏜 총탄 중에는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휴대가 허용되는 권총탄 말고도 휴대가 금지된 AK자동소총 탄이 포함돼 있다고 전해진다. 불법이며 엄중한 도발이다. 거기에 그들의 총격이 MDL 너머로까지 가해졌는지는 분석이 엇갈리지만 만약 MDL을 넘어온 것으로 밝혀진다면 이는 더더욱 용납 못할 도발이 아닐 수 없다. 평화는 수동적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도발이 있을 때는 응당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하며 단호히 대응함으로써 다시는 도발할 엄두조차 낼 수 없게 해야 한다. 이렇게 힘으로 지키는 평화라야 지속성을 갖게 된다. 저들의 도발은 습성화 돼있다. 그 습성을 고치게 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단호한 행동이다. 귀순 병사에 대한 총격이 여느 도발과는 성격이 다를 수 있다고는 해도 그것 역시 습성화된 도발의 연장인 것은 다를 것이 없다. 이 버릇이 문제인 것은 이 버릇을 버려야 평창올림픽이 안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푸른 동해바다에는 3척의 미국 항모가 거느리는 유례없는 최대 최강의 강습항모전단이 한국 해군과 연합훈련을 벌이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로널드 레이건 함(CVN-76)은 북방 한계선을 불과 90㎞ 앞에 둔 지척에까지 밀고 들어가 훈련을 벌였다. 항모 3척에 실린 함재기는 보통 나라의 공군력을 능가하는 240여대에 달한다. 뿐인가. 이들 함모와 한국 해군의 이지스함을 포함해 모두 15척의 대형 함정에 실린 토마호크 미사일은 대략 1000발 정도여서 일거에 정밀타격으로 북의 핵시설을 포함한 주요 군 시설을 초토화할 수 있다. 그밖에 죽음의 백조 B1B전략폭격기가 훈련에 합세했다. 일부 관측통들은 이 연합훈련 자체가 미국 군사옵션의 시작이라고 본다. 어쨌든 이렇게 막강한 한미연합전력이 그들의 코앞에서 위압적인 훈련을 진행 중인데도 북은 전혀 겁먹지 않은 듯 판문점에서 총질을 해대었다. 이 버릇이 평창올림픽에까지 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인들 총알 한 방이 평화를 깰 수 있다는 것을 모를 턱이 없다. 그렇다면 저들을 여하히 다스려 평창올림픽을 무사히 치를 것인가 하는 것이 절박한 문제로 등장한다, 국가적인 지혜를 모아야 한다. 평화는 힘으로 지켜야 한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힘으로만 지켜지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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