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포커스] 가수 김빙 “운명처럼 어린 시절부터 민요풍 노래에 푹 빠졌죠”
[피플&포커스] 가수 김빙 “운명처럼 어린 시절부터 민요풍 노래에 푹 빠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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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룡강성 하얼빈 출신 가수 김빙 (제공: 가수 김빙) ⓒ천지일보(뉴스천지)

흑룡강성 하얼빈 출신 가수
트로트와 민요의 오묘한 조화를 이룬 창법 구사
몸속 흐르는 ‘한민족 피’, 민요풍 곡에 더 관심 가져
오준영 작곡가, 가수 김빙의 재능·가능성 먼저 발견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로 가나/ 실안개피는 언덕 넘어 흔적도 없이/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로 가나/ 밤은 깊고 설움 짙어 달빛도 무거운데/ 가다보면 잊을까 넘다보면 잊을까/ 인생고개 넘어넘어 가다보면 잊을까’

노래 ‘어디로 가야 하나’의 가사다. 이곡을 부르는 가수 김빙(金氷, 32)씨는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 출신이다. 중국 발음으로는 진삥(Jin bing)이다. 한중 글로벌가수를 꿈꾸는 김빙씨는 당찬 눈빛을 지녔다.

그가 부른 ‘어디로 가야 하나’ 노래에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어디로 가야하나’라는 노랫말처럼 갈길 몰라 헤매는 슬픔이 느껴지기도 했고, 눈물이 담겨 있는 듯도 했다. 트로트와 민요의 오묘한 조화를 이룬 창법을 자유롭게 구사해 여러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게 그의 장점이었다. 또 민요풍의 곡이기에 한국인의 정서도 담겨있었다.

◆작곡가인 오준영 대표와의 만남

노래 ‘어디로 가야 하나’는 ㈜청하연미디어 대표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오준영 작곡가가 작사·작곡한 곡이다. 김빙씨는 한국에 와서 가수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을 때 오 작곡가를 만났다.

오 작곡가는 1970년대 후반 한국 가요계에서 인기를 끌었던 곡인 임성훈의 ‘시골길’, 이수영의 ‘하얀 면사포’, 김연숙의 ‘초연’ 등을 만들었다. 오란씨, 동서가구, 맛기차바 등 우리 귓가에 익숙한 CM송도 만들었다.

김빙씨는 오 작곡가에게 처음 곡을 받았을 때의 기분은 잊지 못한다고 했다. “짧은 가사 속에 삶의 아픔과 우여곡절이 모두 담겨져 있습니다. 나이가 있으신 분부터 젊은이까지 저마다 다른 사연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곡입니다.”

노래는 중국어와 한국어로 녹음됐다. 한국에서 ‘어디로 가야 하나’는 지난해 12월 유튜브에 올라갔고 조회 수가 이미 15만이 넘은 상태다. 단시간에 높은 조회 수를 자랑하는 만큼 이 노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큰 것이다.

또 ‘어디로 가야 하나’와 함께 노래 ‘연정’도 오 작곡가가 만든 곡이다. 연정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곡이다.

▲ 흑룡강성 하얼빈 출신 가수 김빙 (제공: 가수 김빙) ⓒ천지일보(뉴스천지)

◆민요풍 노래에 마음 홀려

가수 김빙씨는 “민요풍의 곡을 부르게 된 것은 마치 운명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민요를 좋아했다고 한다. 대중적이면서도 귓가에 익숙한 음율. 입가에서 흥얼흥얼하는 노랫말. 민요풍의 노래를 처음 듣는 순간 그 매력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1980년대 당시 중국에서 판매하는 테이프는 트로트 위주였다. 가수 주현미, 현철, 송대관, 태진아 등이었다. 특히 주현미 가수의 노래에 매료됐다고 한다.

“가수 주현미씨는 트로트 가수로 알려졌지만 민요풍의 간드러지는 목소리도 지니고 있습니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특히 김빙씨에게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인지, 그는 민요에 더욱 마음이 쏠렸다고 한다. 김빙씨의 할머니는 한국인이다. 그의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에 중국으로 넘어갔다. 그 당시 일제가 위안부를 모집한다는 말을 듣게 되자 할머니의 아버지가 할머니를 중국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한국으로 들어가는 길이 막혔고, 결국 중국에서 터를 잡고 삶을 꾸려나갔다.

“할머니처럼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중국 땅에서 정착했습니다. 할머니의 사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노래를 부를 때마다 ‘할머니가 얼마나 한국에 오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면 가족, 특히 할머니생각이 나서인지 ‘어디로 가야 하나’의 노랫말은 김빙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익숙

김빙씨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 분야가 익숙했다. 그의 어머니는 무용을 전공했는데 덕분에 음악 부분이 익숙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김빙씨는 피아노를 전공했고 전자 풍금도 연주했다. 목소리도 고와 학창시절 노래도 불렀다.

12살 무렵에는 한중합작 공연으로 한국에 오게 됐다. 그래서인지 김빙씨는 독립심도 강해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터득한 경험들이 오늘날의 그의 모습을 만든 듯했다.

원래 그의 고향은 하얼빈이지만 예술을 배우기 위해 연변 학교에 다녔다. 특히 연변대학교에서는 노래를 전공해 가수로서 지녀야 할 재질을 소유하게 됐다.

“대학교에서는 만난 선생님이 경기민요를 7년간 배우신 분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선생님의 첫 제자여서 큰 인연이 됐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저와도 비슷해 민요를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오 작곡가는 김빙씨의 재능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봤다. 민요풍의 곡을 써준 것도 김빙씨의 재능과 가능성 때문이었다.

오 작곡가는 “‘어디로 가야 하나’는 멜로디가 아름답고 듣기 참 좋은 곡이다. 하지만 실제 이 곡을 부르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며 “하지만 김빙 가수는 중국에 있을 때부터 국악에 대한 기초적인 실력을 쌓았기에 곡을 줬을 때 소화할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요는 우리 삶이고 역사다. 한국 가수라면 민요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소외받는 것이 아쉽다”며 “김빙 가수는 민요풍의 곡으로 맥을 이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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