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했다. 문 대통령은 자카르타에서 신 남방정책을 발표하면서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아세안과의 교류·협력관계를 4대국(미·중·일·러) 수준으로 끌어올려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했다. 우선 아세안국가란 요즘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시피 한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로서 대표적으로는 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싱가포르·미얀마·라오스 등의 남아시아국가들을 말하고 있다.

지구촌 공동의 자원으로 여겨왔던 중동의 석유생산의 한계를 예측하기 시작하면서 강대국들의 관심은 바로 남중국해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이 아세안국가들이 위치한 남태평양의 지하자원과 해양자원은 지구촌 전체 매장량의 절반에 이른다는 추론이 가능할 정도로 지구촌 자원의 보고(寶庫)다. 현재 남중국해를 두고 미·중의 힘겨루기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이며, 미국과 중국이 앞 다퉈 아세안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심혈을 기울이며 우군확보에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아세안국가들의 리더격인 나라가 바로 인도네시아며,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과는 2006년 전략적동반자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북한과는 비동맹회원국으로 실질적 협력관계는 미미한 실정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1981년 6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방문했고, 2013년 10월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방문하면서 남태평양지역과의 교류를 선점 확대시켜 나가겠다는 그림을 그려왔지만 실제 적극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이제 이 지역은 세계가 주목하는 지구촌 최대 관심지역으로 급부상했으며, 강대국은 물론 주변국들 간에도 불꽃 튀는 경쟁이 시작된 곳이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상황에서 늦었지만 아세안국가들과의 새로운 밀월관계를 시도한다는 것은 고무적이라 평가할 만하다. 더욱이 괄목할만한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4대강국 수준으로 외교관계를 끌어올리겠다는 데 있다. 이 같은 발표는 북핵과 미사일로 4대강국과의 외교 안보관계의 복잡한 틀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외교 전략에서 비롯됐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요즘 한반도는 북핵과 미사일 위협으로 인해 사드배치가 현실화 됐고, 이는 한·미와 한·중관계의 복잡한 함수관계를 연출시키면서 숨 막히는 외교전이 막후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이 사드배치는 소위 ‘3不 원칙’ 즉, ‘사드 추가배치 배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의 불참여, 한미일 군사협력 내지 공조는 가능하나 동맹은 불가하다’는 문 대통령의 ‘한반도 독트린’을 낳기에 이르렀다.

한반도 독트린은 한마디로 한반도로 인한 패권경쟁의 근본요소를 제거하겠다는 의미며, 일종의 균형외교를 선포한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 견제에 한국을 끌어들이려는 미국 정부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원칙으로 한·미·일, 북·중·러의 전통적이며 고질적이며 한 치 앞으로 나갈 수 없도록 발목을 잡고 있는 구조를 무너뜨리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다만 국가의 미래전략적 차원이 아닌 이념적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국민적 의구심을 정부는 하루빨리 벗어나게 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문제는 중국의 입장이다. 사드문제로 불편했던 한·중관계를 복원시키려는 한국 정부의 노력과 문 대통령의 3不 원칙 천명에도 시 주석의 속내는 여전히 불편하다. 금번 아시아 태평양 정상회담(APEC)에서 한중 정상이 관계복원을 약속했다고 하지만, 사실 중국은 한국의 약속에 반심반의(半心反意)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시 주석은 사드배치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밀월관계 속 배신을 경험했고, 또 상대를 쉽게 믿지 못하는 중국인의 기질도 참고해야 한다. 물론 이 같은 중국사정은 자신들의 몫일 뿐, 우리는 주권국가로서 중국의 사정에 좌고우면(左顧右眄)할 필요는 없다. 결국 금번 한·중정상회담을 통해서도 한국이 약속을 얼마만큼 지켜나가는지 지켜보겠다는 정도로 마무리 됐다는 해석이 적절해 보인다. 모든 언론이 앞 다퉈 ‘한중관계복원’이라는 단정적 속보를 타전할 필요는 없지 않았느냐 하는 점이다.

이는 북핵과 한반도를 둘러싼 변화무쌍한 정세를 눈앞에 두고, 문 대통령의 일방적 독트린만으로 모든 게 종식되는 게 아니라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어쩌면 지극히 현명한 판단이 아닐까 자문자답해 본다. 그만큼 한반도의 사정은 그 누구도 함부로 예견할 수 없을 만큼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때 문 대통령은 외교의 방향키를 한반도에서 다른 지역으로 돌린다는 데 괄목할만한 의미가 있다. 주변 4강이 아니더라도 독자적으로 외교의 지평을 넓히며 자주국으로서의 당당함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또 하나의 ‘문재인 독트린’이 되기 때문이다.

한반도라는 반도(半島)국가는 대륙과 해양으로 뻗어나가 온 지구촌을 지배할 수 있는 천혜의 요충지다. 신라 말 우리는 이미 그 길을 가봤던 것이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설치하고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기치 아래 해양과 대륙의 실크로드를 건설함으로 ‘해상 왕 장보고’가 되어 천하를 호령했던 것이다.

하지만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했던가. 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아무리 선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지나치면 화가 미치며,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잘못된 게 있으면 해결의 키는 근본 되는 제도를 고쳐야지 사람을 잡는 것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는 진리를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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