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평창동계올림픽 개최까지 남은 날이 드디어 두 자리 숫자로 당겨졌다. 금번 평창동계올림픽은 개최지 선정부터 준비과정, 북핵과 미사일 등 한반도 정세로 인한 각국의 참여여부 등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그 우여곡절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미당(未堂)의 시처럼,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반전의 결실을 기필코 안겨 주리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긍정의 신호가 아니었을까.

그러면 과연 그 반전의 결실은 무엇일까. 그 답은 개최지 ‘평창(平昌)’이라는 지명이 갖고 있는 뜻 속에 숨어 있으니, 바로 ‘평화’요 나아가 ‘평화와 번영’이다. 이 평화는 “폭풍이 지난 뒤엔 고요가 온다”는 서양속담과 같이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 또는 역사적 운명과 일촉즉발의 한반도 현실이 잘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은 원래 올림픽의 근본정신도 ‘인간의 완성과 세계의 평화’라는 데서 출발했다. 올림픽이 처음 개최된 것은 1896년 그리스 아테네지만 그 기원은 기원전(BC) 776년 그리스 도시국가 앨리스 출신의 코로 에부스가 스타디온 달리기에서 우승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이때를 올림피아의 첫 경기로 유추하고 있다. 시작한 계기는 제우스신을 찬미하는 종교의식의 일환이었으며, 이는 전쟁을 멈추고 ‘휴전’의 목적으로 시작됨으로써 올림픽은 곧 평화의 상징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금번 개최지 ‘평창(平昌, 평화와 번영)’이라는 지명이 갖는 의미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면서도 어쩌면 최고의 가치는 단연 평화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넘어 창조주이신 신 즉, 종교의 이념 또한 다르지 않다. 이로 보아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지구촌의 평화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번 평창동계올림픽의 백미는 역시 북한선수단의 극적인 참여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핵과 미사일로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속에서 그야말로 금번 올림픽은 전쟁을 평화로 바꾸는 대반전의 역사가 기적같이 이 한반도 평창을 주 무대로 이뤄질 것을 기대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평화는 사람이 고안해 내는 수단과 방법으로 이뤄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정치외교나 군사적 수단이나 철학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 모든 것들은 사람과 환경과 상황과 시간이 바뀌면 모든 약속은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과 국가 간의 관계며 인류역사가 잘 증명해 주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인류가 그토록 원하던 평화가 올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과 단체가 평화를 외쳤고 평화의 일을 했으나 지구촌은 오히려 전쟁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지구촌의 전쟁을 없애자고 2차 대전 후 UN이라는 평화기구도 조항도 만들어 봤고, 노벨평화상까지 줘 가면서 평화를 꿈꿔 왔지만, 세계평화기구는 전쟁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전쟁을 정당화시키는 기구로 변질됐으니 지구촌 국제관계의 현실이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오늘날 마치 세계평화의 상징처럼 자리를 지켜온 노벨평화상, 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미얀마 수지 여사가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게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로 인종 청소라 할 정도로 잔인한 살육을 서슴지 않자 그에게 수여한 노벨평화상을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받은 노벨평화상을 취소시키려는 공작이 정치권에서 있었다는 보도 등은 평화실현을 위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애써 온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사람의 생각과 능력으로는 지구촌의 평화실현은 요원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평화는 참으로 요원한 건가. 인류는 이렇게 전쟁과 분쟁으로 인해 죽어가야 하는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평화는 모두(冒頭)에 언급했듯이 사람의 생각과 방법이 아닌 신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며, 신의 설계도 안에 어느 한 때가 약속돼 있으니 약속된 한 사람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면 그 때는 언제일까. 인류가 가장 평화를 그리워하고 목말라 할 그 때, 다시 말해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지구의 종말이 오고야 말 것 같은 참혹한 상황 하에서 사람의 생각이 아닌 신이 개입한 극적인 반전과 기적의 역사로 이뤄질 것이다. 우리가 금번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여할 것이라는 기대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신의 뜻에 있는 것일 뿐,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2천년 전, 유대 땅에 메시야로 오신 예수는 천기는 분별하면서 이 시대는 왜 분별하지 못하느냐고 하신 말씀같이, 2천년이 지나 서기동래(西氣東來)한 오늘날 이 땅 동방(東方)의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벌어지는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문화적 말세 현상이 극에 달한 이 한때를 분별할 수 있다면, 금번 평창동계올림픽에 거는 평화의 기대가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 이 순간 신이 함께하는 한 사람에 의해 평화는 이미 시작돼 진행되고 있고, 나아가 평창이라는 뜻과 같이 전쟁의 위기가 극에 달한 이 한반도에서 평화는 기적같이 불 일 듯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금번 동계올림픽 개최지 ‘평창’은 온 지구촌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 대한민국’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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