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봉 대중문화평론가

애초 필자는 영화 ‘유리정원(감독 신수원)’을 관람한 후 영화분석을 통해 신수원 감독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 플롯, 미장센, 연기분석 등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5일 오전 잠실롯데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인터넷사이트에 들어가 예매를 하려는 순간 깜짝 놀랐다. 10월 25일 개봉했던 영화 유리정원이 이미 스크린에서 사라진 것이다. 건대롯데시네마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미 유리정원은 보이지 않았다. 영등포CGV는 다를까. 상황은 롯데시네마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결국 용산CGV에서 스크린 하나 걸려있는 유리정원을 관람했다.

영화를 관람한 후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독창적인 스토리, 촘촘하게 짜인 빈틈없는 플롯과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관객들이 보지 못하는 아쉬운 점과 돈벌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상업영화 틀기에만 급급한 대기업 프랜차이즈 극장들의 갑질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상업 냄새가 덜나고 부산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유리정원은 개봉 10일도 채 되지 않아 스크린에서 과감히 버려졌고, 롯데시네마는 ‘기획전’이라는 명목으로 이미 오래전 상영됐던 영화 ‘건축학개론’ ‘클래식’ ‘남자가 사랑할 때’ 등을 상영하고 있었다. 누구나 인터넷영화로 쉽게 집에서 볼 수 있음에도 말이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면, 혹자는 저 필자 혹시 유리정원 제작사와 연계되어 있는 것 아니냐라고 물을 수 있겠다. 제작자는커녕 스텝 한명도 알지 못한다. 평론가로서 그저 현실에 치여 부대끼며 사는 서글프고 힘들어하는 현대인들에게 이 작품은 연민의 정을 제공하고 마음 속 깊은 만성적 공허함을 메울 수 있는 작품이라 안타깝기만 하다.

유리정원에서 변형세포를 연구하는 생물학도 재연(문근영)은 적혈구와 엽록체를 결합시키면 인간도 광합성을 할 수 있다는 가설을 내세운 미지의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이 영화는 홀로 숲 속의 유리정원에서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는 과학도를 훔쳐보며 초록의 피가 흐르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무명작가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상에 밝혀지게 되는 충격적인 비밀을 다룬다.

영화 속에서 흔히 인간의 친구로 여겨졌던 개, 고양이, 말이 아니라 나무를 소재로 그렸다는 점, 우리 인간 모두 나무와 닮았다는 점, ‘인간이 나무가 된다’는 독특한 소재만으로도 서사를 추구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이 영화는 서사에 은유 섞인 다양한 시각 효과를 더해 인간의 욕망, 고립, 배신, 상처 등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공감할 수 있는 슬픈 사회적 현실들을 자연이라는 이상적 세계와 연계해 표현한다.

주인공 재연은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에 익숙하지 않아 그의 속성은 나무에 더 가깝다. 자신이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던 인간에게 상처받기 전, 재연은 언젠가 엽록체로 인공혈액을 만들겠다는 푸른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만 재연을 이용하려는 이들에게 발목이 잡혀 실패하고 만다.

다리를 저는 재연의 모습은 흡사 우리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있다. 재연은 다리를 절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마음을 저리고 산다. 남을 꾀어 이득만 취하려는 생각만 하고 있으니, 이제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혼동되는 현실에 치이고 괴로워한다. ‘나무가 된 인간’이라는 판타지적 소재를 통해 고립된 재연이 꿈꾸어 온 순수한 생태계는 점점 훼손당하고 있는 현실 속의 우리가 찾아 헤매는 이상향(理想鄕) 유토피아다. 우리의 모습은 편견과 제어에 가려 점점 공존의 개념을 잃어가고 있다.

CGV, 롯데시네마 등 대기업 극장들은 관객들이 볼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지 말고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토르, 범죄도시, 지오스톰 등이 장악하고 있는 스크린은 다양성을 지닌 많은 관객들이 창작영상예술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주중이든 주말이든 가까운 멀티플렉스에 가보면 CJ, 롯데, 쇼박스가 배급한 영화들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이는 관객들의 향유권과 다양성을 경험하고 영화 예술을 즐길 기회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관객들의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액션, 코미디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장르가 어떻든 사회적 이슈와 병폐를 비꼬고 우리의 모습을 담고 우리의 이야기를 부르짖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10만명도 채 보지 못한 유리정원의 흥행부진은 안타깝기만 하다. 현재 토르의 스크린수는 1047개이다. 유리정원은 스크린수가 고작 32개다. 관객들이 영화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겠다는 멀티플렉스의 기본 설립 취지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다시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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