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과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 오래전부터 시장은 사람들의 삶과 뗄 수 없는 한 영역으로 존재해 왔다. 또 급변하는 현대 속에서도 시장은 제 자리를 지키며 오가는 이들에게 정을 나눠주고 있다. 이와 관련, 선조들의 삶이 담긴 전통시장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오늘날 시장의 가치를 알아보고자 한다.
▲ 옛 모습의 광장시장 (광장시장 홈페이지 캡처) ⓒ천지일보(뉴스천지)

1905년 장터 형성에서 시작
조선 자본 바탕으로 한 시장
청계천 변천 따라 시장 확장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서울 종로구 예지동의 ‘광장시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상설시장이다. 이곳은 물품을 거래하는 장소에 그치지 않는 곳이다. 자연스레 상인들 간 모임을 제공했고, 크고 작은 각종 정보교환이 이뤄지는 장소였다. 오늘날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광장시장은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을까.

◆광장시장의 역사

조선시대에는 3대 시장이 있었다. 국가에서 허가한 시전, 서소문 일대에 있던 칠패시장, 흥인지문 일대의 배오개에 있던 배오개시장이다. 특히 칠패시장과 배오개시장은 18세기 상업의 발달과 맞물려 한양 주변의 누원점, 송파장 등과 연계해 민간 시장으로 크게 활성화됐다.

개항기에 중국과 일본의 상인들은 서울의 상권을 빠르게 장악했다. 특히 청일전쟁 후 일본상인이 서울의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특히 1905년 일제가 화폐정리사업을 단행하면서 조선 상인의 기반을 흔들자 조선 상인들이 그해 7월에 광장주식회사를 설립했다.

▲ 옛 모습의 광장시장 (광장시장 홈페이지 캡처) ⓒ천지일보(뉴스천지)

이 당시 청계천에는 여러 개의 다리가 있었는데, 회사가 광교와 장교 사이에 있다는 의미에서 다리 이름의 앞 글자를 따서 광장주식회사라는 이름을 지었다. 여기서 광장시장이라는 말도 유래했다. 처음에는 광교와 장교의 첫 글자인 광장(廣長)이었다. 하지만 훗날 넓게 저장한다는 의미의 광장(廣藏)으로 한자가 바뀌었다.

오늘날 예지동의 광장시장은 1900년대 초중반까지 동대문시장이라 불렀다. 일본인들이 경영권을 행사하던 다른 시장과 달리 광장주식회사가 운영하던 동대문시장은 순수 조선 자본을 바탕으로 한 조선인 시장의 명맥을 꿋꿋이 지켜나갔다.

광장주식회사가 운영하는 동대문시장은 일제강점기에 남대문시장과 함께 서울의 대표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오늘날의 동대문시장은 대표적인 의료상가 밀집지역으로 알려졌지만, 동대문시장은 초기에 주로 미곡·어류·과물·잡화 등이 거래됐고, 미곡이 가장 많이 팔렸다. 대두·소두류의 잡곡 등도 팔렸다.

1911년의 통계로 볼 때, 상점의 종류는 점포수 90개 중 미곡상이 31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 어물상이 12개, 과물상이 15개, 잡화상이 15개, 기타가 25개 등의 순이었다.

▲ 오늘날의 광장시장. 주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동대문시장 확장과 광장시장

오늘날 광장시장의 위치는 조선시대 배오개라고 부르던 곳이다. 이곳은 오늘날 종로구 인의동 남쪽에서 종로4가 예지동 일대였다. 원래 배오개 일대는 서울의 대표적인 빈민 거주지였다. 영조 때에 청계천을 준설하면서 파낸 흙을 쌓은 흙더미가 주변에 있었는데, 여기에 거지들이 모여 살게 됐다. 이 거지들은 1920년대 중반에 사라졌다.

해방 이후 동대문시장 상인연합회가 부활했다. 일제강점기 때까지 이곳은 소매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시장의 운영이 도매 중심으로 강화되면서 상권이 점차 확장됐다. 6.25전쟁으로 시장은 폐허가 됐음에도, 상인들은 폐허 속에 천막을 치고 임시로 장사를 시작했다.

이 당시 구호물자와 미군 부대에서 흘러 나온군수품 등을 불법으로 거래를 하기도 했다. 그 결과 1952년 5월 말에 동대문시장의 점포 수는 188개로 1946년의 수준으로 회복했다. 동대문시장의 경기가 살아나면서 규모는 커졌다. 청계천 천변을 따라 동쪽인 종로5가 방향으로 확장해간 것이다.

당시 종로 5, 6가의 시장은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북한에서 내려온 월남인과 피난민, 이농민이 대규모 무허가 시장을 형성한데서 비롯됐고, 이후 점차 공식적인 시장으로 자리 잡아갔다.

특히 1970년대 말 동대문종합시장이 건립된 후 동대문 일대의 시장은 자연스레 명칭이 구분됐다. 예지동의 전통적 시장은 광장시장으로 불렸고, 종로5가의 시장은 동대문시장으로, 종로6가의 시장은 동대문종합시장으로 불렀다.

지리적으로 보면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대규모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시장이 구분됐음에도 여전히 이 일대를 동대문시장으로 부르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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