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전남 나주시 죽림동 나주반전수교육관 내 작업장에서 김춘식 소반장이 나주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국가무형문화재 김춘식 소반장
나주반, 간결·소박·견고함 특징
10단계 60일… “제품 아닌 작품”
“천직으로 여기고 맥 이을 것”

[천지일보 나주=이진욱 기자] “상을 밥이나, 차, 술 등 음식을 놓는 용도로만 대부분 생각하는데 깊이 들어가 보면, 거기엔 나주의 역사와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우리의 옛 정서가 녹아있어.”

나주시민은 ‘나주’를 대표하는 것으로 천연염색과 함께 나주소반(전남 나주에서 생산되는 소반)을 꼽는다. 지난 3일 전남 나주시 죽림동 나주반전수교육관에서 나주반의 명맥을 잇고 있는 김춘식 소반장(82, 국가무형문화재 제99호)을 만났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정서 녹아 있어.”

김춘식 소반장(小盤匠, 음식 그릇을 올려놓은 작은 소반을 만드는 기술·기능을 가진 장인)은 19세인 1955년부터 삼종형 김락연에게서 목수 일을 배웠다. 그 후 김락연의 권유로 나주반과 전통 목물을 만들었던 장인태에게 나주반 전통기법을 전수받고 영산포 중앙동에 공방을 마련해 나주반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반세기가 넘었다.

그는 나주반의 역사성과 과학적 우수성, 만드는 방법과 함께 나주반에 담겨 있는 조상들의 철학과 삶에 대해 설명했다. 김 소반장은 “요즘 학원, 과외 등 조기교육을 많이 시키는데,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가족들이 함께 밥을 먹으며 인성교육을 했던 것이 우리 조상들의 진정한 조기교육이었다”면서 나주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그는 먼저 “역사적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소반의 역사는 인류가 시작됐을 때부터 특히 석기시대에 하늘의 신께 제사를 드리던 때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질이 나무이다 보니 부장품으로 남아있지 않아 이 분야에 대한 자료나 전문가(교수)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한 일본인이 조선을 여행하며 쓴 견문록인 ‘조선의 소반, 조선도자명고(출판사, 학고재)’ 등 서적의 기록으로 나주반이 간단히 전해지고 있는 정도다.

◆“타산 안 맞지만… 나에게는 천직”

그는 나주반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잡다한 장식 없이 간결한 점 ▲겉의 화려함은 없지만 내부구조는 정교하고 튼튼한 점 ▲나무의 결이 보이는 옻칠을 사용한다는 점 등을 꼽았다.

나주소반의 제작과정은 상판 제작, 변죽 제작, 상판과 변죽의 접합, 운각제작, 상판에 운각 결속, 다리제작, 상판의 운각에 다리 세우기, 기둥에 족대 연결하기, 다리에 가락지 끼워 맞추기, 소반에 옻칠하기 등 총 10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약 두 달이 걸린다.

김 소반장은 제작과정 중 다리 제작과 다리 세우기가 가장 어렵고 나주반만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상다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지역 상다리(발)는 반듯하고, 판재 조각이 반듯이 선 것을 사용하는 반면 나주반은 다리 세우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상다리는 조금만 각이 틀리면 균형이 맞질 않고 변죽(상 가장자리)이 둘려지는 것도 중요한 데 이것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다”며 “상다리 하나를 제대로 깎아내는 기술을 배우려면 적어도 5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나주반의 또 하나의 특징은 나무의 결이 그대로 보이는 옻칠을 사용해 검붉게 피어오른 부드러운 광택이다. 그는 “홍칠은 옛날에 임금이 사용하던 건데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며 “옻칠하는 것도 기술인데 요즘 사람들은 값싼 재료로 칠해 버린다”며 한숨을 쉬었다.

▲ 나주반상. (제공: 나주반전수교육관)

◆“제품이 아닌 작품” 타산 안맞지만 ‘소명’

나주반은 주로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로 만든다. 상판으로 주로 사용되는 느티나무는 무늬가 많을수록 좋은 재료다. 겉모습이 울퉁불퉁한 것이 켜 놓으면 무늬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다리와 운각은 단단하고 강하면서 잘 휘어지는 조선 소나무와 버드나무를 사용한다.

하지만 김 소반장은 나주반상은 경제 논리로는 이 일을 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로 느티나무를 사용하는 데 1200만원 정도 하는 나무 한주를 썰어 보면 30~40%만 쓸 수 있고 나머지는 재료로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제작 기간도 60일 정도 소요되니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상하고는 가격을 경쟁할 수 없다. 김 소반장은 “나주반은 제품이라기 보다 작품으로 봐야 한다. 수지타산이 안맞아 이제는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만들려는 사람도 적다. 그래서 국가가 나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것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추석 등 명절이면 지방은 물론 서울에서도 선물용으로 주문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나주반을 팔 때면 반드시 두 가지를 강조했는데 “하나는 나주반도 자연(나무)이기 때문에 물을 먹어야 하니 젖은 행주로 자주 닦아줄 것, 또 하나는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와도 (화 난다고) 상을 함부로 다루지 말 것. 이것만 잘 지키면 100년도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회상했다.

요즘은, 특히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는 손님이 많이 줄었다. 지난 추석에는 나주반상이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 소반장은 국내 유일의 나주반 국가무형문화재로서, 천직으로 삼고 김영민 전수자와 함께 전시회 준비, 이수자 양성 교육 등 나주반 활성화를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 소반장은 나주반 제작 과정을 시연하며 “매주 전수관 작업장에서 전통가구와 소반을 만드는 목공예 교실을 열고 있다”며 “허리 수술 후에 불편하지만 그래도 먼 곳에서도 꾸준히 배우러 오시는 분들이 있어 나주반 강의를 할 때면 힘이 난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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