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이 목전인데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트럭공장을 찾아 이른바 ‘현지지도’의 길을 걷고 있다. 또 북한의 2인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같은 날 탄광을 찾아 현지시찰의 길을 걸었다. 이처럼 북한의 1인자, 2인자가 동시에 경제발전을 위해 ‘노고’를 바친 적은 일찍이 없다. 김정은이 트럭공장을 찾았지만 생산된 트럭은 단 1대도 눈에 띄지 않고 겨우 선반이나 볼반 앞에서 사진 몇 장 찍은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김영남 역시 탄광 근로자들과 만나기는커녕 데리고 간 간부 몇 명과 사진 몇 장 찍은 것이 노동신문에 실렸을 뿐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내일 모레인데 왜 북한의 지도자들은 ‘경제부문’에 이토록 관심을 기울이고, 왜 또 노동당 선전기관들은 지도자들이 경제건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대서특필하고 있는 것일까. 모름지기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트럼프 방한 기간에 뭔가 북한을 향한 군사적 옵션이 실행에 옮겨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여 두 지도자가 경제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평화로운 현지지도’의 연출로 군사적 타격을 예방하는 효과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근래 북-미 간 말싸움의 승리자는 트럼프와 김정은 모두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워싱턴 정가를 맴돌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설은 지금 미국의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트럼프는 겨우 작은 나라 지도자 김정은을 혼내놓고 마치 세계평화를 리드하는 지도자인 양 의기양양해 있다. 김정은은 어떤가? 그는 선대 수령들이 이루지 못한 핵보유국의 지위쟁취 목전에 온 자만심으로 또 다시 숙청의 피비린내를 풍기고 있다.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나를 보라”는 독특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김정은의 손에 앞으로도 북한의 고위간부 3명 중 1명이 숙청되거나 처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의 북-미 간 대결의 손익계산은 아베의 재당선으로 이미 끝났다. 일본의 보수화는 되돌릴 수 없는 기관차로 질주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지난 총선거에서 국회 해산의 명분을 김정은에 의한 ‘북풍’으로 삼고, 국난 돌파란 슬로건으로 자민당의 압승을 이끌었다. 연립정권이 개헌선을 넘는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해 역대 최장기 정권을 이어갈 태세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국민의 지지가 강고했다기보다는 야당의 분열과 난립 덕택이었다. 아사히신문의 10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37%로 반대인 46%보다 낮으며, 지지하지 않는 이유의 38%가 아베 총리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하고 있고, 아베의 총리 연임에 대한 지지가 34%, 반대가 51%로 나왔다. 따라서 아베 총리는 개헌 등에 조심스러운 행보를 취하고 있는 한편 선거 공약인 북핵 위협이란 국난 돌파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결코 한국에 나쁜 상황은 아니다. 문제는 한·일 간 신뢰 관계다. 아베 정권의 역사수정주의,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둘러싼 대립으로 양국 관계는 국교 정상화 이래 최악의 상태로 전락했고,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를 둘러싼 지속적 논란으로 관계 회복이 어렵다. 따라서 대일정책의 출발점은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투트랙 외교, 즉 대북 공조, 안보 협력, 경제 협력, 사회·문화 교류 등을 역사 문제와 분리해 각자 영역의 논리에 맞게 대응해 나가는 것이다. 트럼프 순방을 맞이해 한국 정부는 한·미·일 협력의 틀 속에서 북핵 저지와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된다면 일본과 당당하게 군사 협력을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 대북 군사 정보 공유, 억지력 강화, 확장억지 신뢰성 제고, 미사일 방어 등에서 적극 협력을 미룰 이유가 없다.

일본이 전쟁 가능한 국가가 됐다거나, 군국주의화를 위한 개헌의 야욕이 실현될 것이라는 반일 정서를 자극하는 논리에 흔들려 협력에 주저하면 결국 한·미·일 협력이 뒷전으로 밀리고, 미·일이 원하는 지역동맹적 시도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역사 문제는 그 자체 논리에 근거해 분리 대응해야 한다. 당면한 위안부 합의 문제 처리는 국제 정세 상황 논리나 국내 여론의 정서적 반응에 휩쓸리지 말고 인류 보편 가치에 기반한 논리적 대응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우리는 위안부라는 과거사에 너무 함몰돼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반인민적인 북한의 김정은에 의해 지금도 적지 않은 여성들이 중국으로 팔려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가? 이미 우리 국민들 모두에게 민족주의적인 강한 애국심을 심어준 위안부 문제는 덮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심판에 맡기고 눈앞의 진행형 ‘위안부’에 관심 좀 가져주기 바란다. 통일 후 북한 주민들에게 할 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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