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한국기술금융협회 IT 전문위원

 

매체(medium)에 대한 지난주 칼럼에서 매체의 역할은 보내는 신호 혹은 메시지를 최종 목적지/수신자에게 정확하게, 왜곡(distortion) 없이 전달해야 하는 것이라고 언급했으며, 인간의 언어나 아스키코드, 유니코드를 이용해 변환, 전송되는 컴퓨터언어의 전송 역시 이러한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 11위 인터넷 이용자, 세계 1위의 인터넷 속도, 가구당 인터넷 보급률 5위(2017년 기준, 출처 wearesocial.com)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인터넷 발전사는 매우 경이로우나, 급속히 증가하는 데이터량에 대한 빠르고 정확한 전송과제는 늘 직면하는 당위성의 문제가 됐다.

국내에 본격적인 인터넷 서비스 상용화가 시작된 지는 1990년대 말부터 불과 20여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 시장은 가구당 보급률 5위를 뛰어 넘어, 상당한 차이로 속도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현재의 인터넷 환경 하에서, 속도는 물론이고 그에 따른 서비스 품질, 즉 정확한 신호 전달률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됐으며, 이를 위해 SLA의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SLA(Service Level Agreement; 서비스 수준 계약)는 인터넷서비스의 품질을 개선하고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서비스의 품질을 보장하는 기준, 즉 품질보장제도를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초고속인터넷 이용자는 전송속도가 당초 이용자가 가입한 서비스의 약관에 명시된 기준 속도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KT, SKT, LGU+와 같은 기간망통신사업자(ISP; Internet Service Provider)로부터 이에 대한 비용보상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속도뿐만 아니라 광케이블 절단, 중계기 고장 등 장애로 인해 서비스 이용에 지장을 받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망사업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90년대 말 시작된 인터넷 범용화로 2000년대 초 급격하게 데이터 전송량이 증가하고, 이에 따른 속도 저하, 고장 등 이용자들의 불만이 확산되자 당시 정보통신부에서는 2002년 10월 SLA를 전면 시행했다. 범용화 초기, 인터넷 시장을 초기 선점하고자 가입자 유치 경쟁에만 열을 올리던 통신사업자들에 대해 이용자 편의를 강조한 정부로부터의 일종의 경고였던 셈이다.

그러나 일괄 시행된 본 제도는 당시 통신사업자였던 KT, 하나로, 데이콤 등의 불만과 반발로 일정 부분 유예됐는데, 이들 사업자들은 AS(사후관리서비스) 방식과 손해배상액 지급 등은 물론, 통신망 고도화를 위해서는 지속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렇게 될 경우 이중적 부담이 되어 장기적으로 통신인프라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논리로 정부를 설득해 결국 대도시 중심의 일부 프리미엄급 지역에만 본 SLA 보장제도를 적용하게 된 것이다. 기가급 인터넷이 등장하고 실시간 고장수리 서비스가 제공되는 현재의 시점에서, 불과 얼마 전의 이와 같은 당시 상황은 다소 생소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여하한 경위가 됐건 이 같은 강력한 품질보장을 위해 통신사업자들은 네트워크 고도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이 같은 기반이 현재 전국을 그물망처럼 촘촘히 엮은 초고속 전송망을 보유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SLA의 평가 척도는 ‘서비스될 수 있는 비율’ ‘동시 서비스 사용자수’ ‘실제 성능을 주기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명확한 성능 기준’ 등이 있는데, 이에 대한 적용은 통신사업자별, 가입한 상품 종류별로 상이하게 적용되고 있다. 일례로 한 통신사업자의 100M(메가)급 인터넷의 경우, 본 상품의 최저보장속도인 50M를 기준으로 ‘30분간 5회 이상 측정해 3회 이상이 최저속도 미달일 경우 당일 이용요금 면제’라는 SLA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주요 산업 중 하나인 ‘빅데이터’ 산업의 근간이 되는 클라우드 서비스의 경우 대부분의 통신사업자들은 최하 가용률-서비스를 온전히 사용하는 비율-을 연간 99.5% 이상으로 SLA를 적용하고 있는데, 이는 연간 0.5%의 시간인 약 44시간의 장애 발생 시 요금의 10~20%를 할인해 준다는 의미이다. 최근에는 이것도 모자라 99.9%라는 연간 525분, 하루 채 2분도 안 되는 시간 장애 발생 시에도 위와 동등한 금액을 보상하는 품질보장수준이 제시되고 있다. 클라우드 이용자들의 평균이용 요금이 매년 5천만원 이상이므로 최대 1천만원가량의 요금보상을 해 준다는 것인데, 그야말로 품질에 대한 엄청난 자신감이 없으면 제시할 수 없는 상당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규제가 때론 산업발전의 마중물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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