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2007년 1월 29일, 미 국방부 산하 미사일 방어국 사무차장인 육군 준장 패트릭J.오라일리는 폴란드와 체코 공화국에 배치될 대규모 탄도미사일 방어가 중동의 적들로부터 미국과 나토를 보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자살 폭탄 테러가 미 전역을 공포로 물들게 한 점을 감안할 때 충분히 납득이 가는 조치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정면으로 미국을 반박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었던 푸틴은 안보회의에서 “미국은 사정거리가 5000~8000km인 미사일이 자국과 유럽을 위협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미사일을 보유한 ‘문제 국가’는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의아스러운 점은 미국이 왜 하필 폴란드에 탄도미사일을 배치했느냐는 것이다. 저자는 이란과 훨씬 더 가까운 나토 동맹국 터키에 미사일 방어 기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미국이 폴란드를 택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2007년 미국 정책입안자들은 유라시아의 중심에서 러시아를 기필코 도려낼 거라며 전쟁계획을 미결안으로 처리했다. 러시아를 포획하기 위한 핵미사일은 수많은 병기와 선전 중 한 가지 수단에 불과했으며, 미국 100년사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유일한 강대국(러시아)을 제거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저자는 패권국가 미국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알게 모르게 전 세계를 장악해가고 있으며, 미 국방부는 이를 ‘전방위 지배’라고 부른다고 주장한다.

철의 장막(베를린 장막)이 무너질 때 사실상 냉전은 종식되는 듯 보였으나 이는 신(新)냉전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미국은 자본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력을 키워나갔다. 저자에 따르면 이 대국(大國)은 ‘제국’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 치밀함을 자랑하며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제국주의적 패권을 휘둘렀다.

미국은 대단히 영리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치밀했다. 미국은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무기를 휘두르며 자국의 세력을 넓혀갔다. 워싱턴은 미얀마와 티베트 및 다르푸르의 인권을 문제 삼기 시작하며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했다.

미얀마 시위를 살펴보자. 저자는 이 그럴듯한 ‘인권드라마’를 찍기 위해 미국의 각 기관이 머리를 싸맸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이나 그루지야의 ‘장미 혁명’처럼 미얀마의 ‘샤프란 혁명’도 워싱턴 정권 교체 본부가 조작한 행사에 불과했다고 밝힌다.

여기서 저자는 분명한 점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간다.

“2008년 미국의 모습은 1930년대 말 당시 몰락해가던 대영제국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미국 100년사의 흥망성쇠는 군사력에 달려 있기에 미 국방부는 지구촌 곳곳에 기지망을 세웠다.”

미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윌리엄 엥달의 문제제기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책은 자유시장과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육‧해‧공을 비롯해 우주와 사이버공간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전 영역을 삼켜가고 있는 미 국방부의 위험한 계략을 파헤친다.

가볍게 읽히는 서적은 아니지만 딱딱하지만도 않다. 세계를 거머쥔 대국들의 암묵적인 움직임을 읽는 동안 다가올 미래를 내다보는 반짝이는 지혜를 캐낼 수 있을 것이다.

윌리엄 엥달 지음 / 에버리치홀딩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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