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운동선수들에게는 저마다 꿈이 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거나 프로선수로서 최고가 되는 게 이상적인 목표다. 개인 종목이 됐든지, 단체 종목이 됐든지 항상 최고가 되기를 열망한다. 하지만 극소수의 운동선수만이 자신의 꿈을 이룬다. 축구 스타 박지성(36)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선수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영웅으로 자리 잡았던 그는 월드컵 성공을 발판으로 히딩크 감독에 의해 발탁돼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을 거쳐 프리미어리그 최고 명문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최고의 활약상을 펼쳤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이 원정 첫 16강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던 그는 2014년 전격 은퇴, 예쁜 아나운서 출신과 결혼한 뒤 영국에서 장차 축구 행정가를 꿈꾸며 축구 공부에 푹 빠져 있다.

많은 스포츠팬들에게 잠시 잊혀 있던 그가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24일 그리스 올림픽 헤라 신전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채화행사에 참여한 뒤 한국을 대표하는 첫 성화주자로 나선 것이다. 원래 매번 동·하계올림픽 첫 성화주자는 그리스올림픽위원회에서 지정하는 그리스 선수가 나서고 이어 올림픽 개최국을 대표하는 인물에게 넘어가는데 그가 선발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원래 동계올림픽 종목과는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축구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올 8월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합류하면서 인연을 갖게 됐다. 그가 한국의 첫 성화주자로 참여하게 된 데는 선수 시절의 뛰어난 성과와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서의 상징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국축구에서 열심히 노력해 경기력을 향상시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성공 모델의 대표적인 선수였다. 고교 시절까지만 해도 대학 진학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무명 선수였다. 연세대, 고려대 등 축구 명문대학의 스카우트 공세를 받지 못하고 명지대에 진학해야 했던 그는 체력과 기술을 급격히 끌어 올려 국가대표팀 허정무 감독의 눈에 들었다. 

필자가 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시드니올림픽 때였다. 허정무 감독의 대표팀에서 부지런히 공수 연결을 이어가며 키 플레이어로 활약했던 그는 비록 한국이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하지는 못했으나 올림픽에서 본격적인 국제경기경험을 쌓았다. 침착하면서도 승부근성이 매우 뛰어난 그의 기질을 허 감독 등 축구인들은 나름 주목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비상하게 된 것은 히딩크 감독을 만나면서였다. 한·일월드컵을 1년 앞두고 한국대표팀을 맡은 히딩크 감독은 그를 비장의 카드로 지목했다. 당시 21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단 결정적인 기회를 잡으면 먹이를 놓치지 않는 사나운 야생 동물처럼 밀어붙이는 적극성을 보였다. 그의 진가는 예선 최종전 포르투갈전에서 나타났다. 이영표의 패스를 받은 그는 멋진 트래핑과 침착한 플레이로 환상적인 골을 넣었다. 일부 축구 전문가들은 한국축구 100년 사상 이 골이 ‘최고의 골’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루이 피구 등 포르투갈 선수들을 상대로 전혀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겨뤄 값진 승리를 이끌어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그의 출전 여부를 놓고 연막작전을 펼쳤다. 포르투갈 팀을 헷갈리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팀의 전력을 낮게 봤던 포르투갈은 한국팀에서 누가 나오든 별반 꺼리지 않았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직후 발행된 월드컵 회고록 ‘마이 웨이’에서 “원래 박지성은 공격과 수비를 가리지 않은 완벽한 선수인 것을 알고 있었다”며 “그가 뭔가 해낼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강팀 포르투갈에서 그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17년 만에 올림픽과 인연을 맺은 박지성은 내년 2월 평창에서 한국 선수들이 열심히 뛰도록 경기장 안팎에서 뜨거운 응원을 펼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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