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이야기] 시월은 ‘상달고사’ 지내는 달
[민속이야기] 시월은 ‘상달고사’ 지내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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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한민족은 오랜 세월 시월(10월)을 상달이라 해서 집집마다 고사(告祀)와 치성을 드렸다. 서기전 2333년(戊辰年) 음력 10월 3일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했기 때문에 10월을 상달(上月) 또는 으뜸달이라 한다. 오늘날 10월 3일을 개천절이라 하여 국경일로 기념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상달에 고사를 지내는 풍습은 햇곡식을 거두게 된 것이 오직 하느님과 선조들께서 보살펴 주신 덕분이라고 여겨 햇곡식으로 술과 떡을 빚어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한민족은 고대국가부터 시월이면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부여의 영고(迎鼓) 등 추수감사 의미의 제천의식을 치렀다. 고려시대는 팔관회(八關會)로 맥을 이었고 조선시대 들어와서는 민간에서 고사 혹은 안택(安宅)으로 전승됐다. 

조선이 국가적인 행사로 하늘에 제사를 올리지 않았던 것은 중국의 천자만 천제를 지낼 수 있고 제후국 조선의 왕은 종묘와 사직에 제사할 뿐이라는 유학자들의 주장에 막혀 임금의 천제 거행이 저지됐기 때문이다.

이같이 상달고사의 유래에 관해 전하는 기록은 없으나 고대 국가의 제천의식에서 가정의례로 변모했다고 볼 수 있다.

상달고사는 각 가정에서 10월 중 길일을 택해 지내지만 특히 말날인 오일(午日)을 좋은 날로 여겼다. 이 때 집을 지키는(집지킴이) 가신 중에서도 가장 우두머리 성주신를 위한 굿을 했다.

성주의 모양은 지방에 따라 다르나 대개 대청이나 마루에 모셔져 있으며 성주굿은 무당이 집안의 평안과 자손의 수명장수를 빌었다.

또 스님을 청해 고사를 지내며 가정의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물론 고사를 지낼 때 성주신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칠성신, 삼신, 터주신, 조왕, 측신 등 집안의 여러 가택신에게도 기원했다. 

고사를 지내는 일은 대개 가정주부가 담당했다. 대문 앞에 금줄을 치고 집 주변에 황토를 깔아 집안으로 부정이 들어오지 않도록 했다. 

제물로는 떡과 술, 과일과 고기 등 각종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했다. 특히 떡은 팥 시루떡과 백설기를 빼놓지 않았다.

고사와 더불어 성주단지, 조상단지, 삼신단지 같은 신주단지의 곡물을 햇곡으로 갈아 넣었다. 그리고 묵은 곡식으로는 밥을 짓거나 떡을 해 집안 식구끼리만 먹었다. 복이 담긴 음식이라 여겨 복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려는 뜻이 담겼다. 

꺼낸 쌀이 곰팡이가 피었거나 썩어 있으면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이라 근심했고 반대로 깨끗하면 집안의 길조로 여겼다. 

햇곡식으로 바꿔 담을 때에는 햇빛에 곡식을 잘 말리고 정성껏 손질했다.

또 지방에 따라서는 시월 소날(丑日)이나 말날(午日)에 집안에 모신 터주단지·조상단지·삼신단지에 햇곡을 갈아 넣는 일로 고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시월 말날 무오일(戊午日)에는 특별히 말의 신(馬神)에게 무떡을 해서 제사지냈다. 

아울러 시월이면 5대조 이상 조상들에게 시제(時祭)를 지냈고 공동으로 섬기는 신에게 마을의 안녕을 빌었던 대동굿(또는 부군굿, 도당굿, 별신굿)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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