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원장(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주변 강대국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미국은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북한의 잠수정 침투를 발견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일본 역시 나름대로의 대북 제제 방안을 발표하면서 총리는 순국 장병들에 대한 묵념까지 제안했다.

중국은 역시 북한을 옹호하더니 이제야 조금 우리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 같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의 오랜 특수 관계는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점들이 감지되고 있다.

중국은 만일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정일은 최근 중국을 방문했다가 기대한 만큼의 성과물을 별로 얻어내지 못했기에 서둘러 돌아갔다는 말도 들린다.

김정일은 중국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과 감정을 갖고 있을까? 마찬가지로 이명박 대통령은 어떠할까? 그러고 보니 필자 역시 예전에 생각하고 느꼈던 중국과 지금의 중국은 많은 차이가 난다.

10대에 느꼈던 중국은 꽹과리를 치면서 인해전술로 우리나라를 쳐들어왔던 공산당 무리였다. 20대에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크지만 반대로 훨씬 더 못사는 등치만 큰 나라였다. 그러더니 30대에는 경제 개혁을 하면서도 정치 개혁을 전혀 이루지 않고 있는 모순된 나라로 다가왔다.

그러나 40대인 지금에 와 닿는 중국은 무섭고 대단한 나라로 바뀌었다.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강대국이요, 세계를 미국과 함께 이끌어갈 이강 구도의 한 축이요,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두려운 나라가 된 것이다.

결국 필자의 생각은 중국을 가볍게 여기는 마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바뀌었고, 그에 따르는 감정 역시 깔보는 마음에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은 어떠했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대통령과 북쪽의 김정일은 어떠할까 추정해 보자. 대통령은 중국을 우리 편으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우리 편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중국이 우리의 반대편에 서서 북한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앞으로의 중국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입장을 넘어서서 우리 편으로 올 수도 있다. 국제 정세의 영향이든 또는 경제적 이득이든 간에 중국이 자신의 국익에 부합하면 그렇게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중국에 대해서 지속적인 러브 콜을 할 것이다. 물론 미국과의 사이를 고려할 것이다.

김정일은 어떠한가. 중국의 태도 변화가 아주 작을지언정 심적 타격은 엄청날 것이다. 체제 유지를 위한 원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심리적 지지를 서서히 또는 급작스럽게 상실한 것과 같은 정신적 외상(trauma, 트라우마)을 입을 수 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기분과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잘 대해주는 것의 차이를 상상해 보라. 한두 번 배신당하면 상종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한편 앞으로 잘 될 것 같은 긍정적 기대가 생기면 더욱 열심히 하고 싶은 것 역시 사람의 심리다. 대통령과 김정일, 그리고 우리 국민은 지금 한참 ‘교정적인 감정 경험(corrective emotional experience)’을 하고 있는 중이다.

교정적인 감정 경험이란 원래 정신과 치료 용어로서 과거의 경험과는 다른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얻는 과정을 말한다. 교정적인 경험은 단지 생각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감정 상태의 변화도 수반하는데, 이것은 정신과 의사와의 치료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과연 우리는 중국에 대한 생각의 변화에서 그칠 것인가, 아니면 감정의 변화도 함께 이루어질 것인가. 북한은 또 중국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변화가 향후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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